‘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은 증권업계의 오랜 투자공식이다. 큰 수익을 내려면 그만큼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가끔 틈새가 생기기도 한다. 제도적인 변화가 있거나 시장이 과열될 때다. 코로나19 이후 공모주 시장이 대표적이었다. 공모주 광풍이 불면서 단순한 청약만으로 2~3배 수익을 낼 수 있었다. 이 광풍이 스팩(SPAC·기업인수목적회사)으로 옮겨가고 있다. 5~6배 급등주 속출
스팩은 비상장 기업을 인수할 목적으로 설립된 ‘페이퍼컴퍼니’다. 상장 후 3년 내 합병 기업을 찾아야 한다. 이 기간이 지나면 상장폐지된다. 하지만 공모가로 투자한 사람들은 투자 원금과 예금 이자를 돌려받는 원금보장형 상품이다. 대신 기대수익은 크지 않다. 실제로 합병 대상이 발표되기 전까지 주가는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하지만 최근에는 3~4배까지 오르는 종목이 속출하고 있다.
지난 5월 상장한 삼성스팩4호는 상장 1주일 만에 주가가 1만2000원을 넘어섰다. 청약을 통해 공모가(2000원)로 투자했으면 최고 수익률이 545%다. 지난달 17일 상장한 삼성머스트스팩5호도 상장 후 4거래일 만에 수익률 522.5%를 찍었다. 최근 유진스팩5호·6호도 각각 314%, 205%의 수익률을 냈다. SK증권에 따르면 지난 5월 스팩의 수익률은 평균 35.5%를 나타냈다. “무위험 고수익 상품”원금은 보장되는데 수익은 5~6배에 달하다보니 관심도 커지고 있다. 눈치 빠른 투자자들은 일반 공모주 대신 스팩 청약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공모주에서 ‘슈퍼갑’은 크래프톤이 아니라 스팩이라는 말이 나오는 배경이다.
작년 3.14 대 1 수준이었던 스팩 청약 경쟁률은 100배 이상 치솟았다. 지난달 진행된 청약에서 삼성머스트스팩5호는 일반 투자자 경쟁률이 908.5 대 1을 기록했다. 올해 상장한 하나머스트7호스팩, 유진스팩6호도 경쟁률이 200 대 1을 넘어섰다.
전문가들은 스팩 공모주를 최고의 재테크 상품 중 하나로 꼽고 있다. 공모가에 들어가면 최소한 원금과 이자를 받을 수 있고, 현재 장세에서는 높은 수익률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위험에 상승여력이 몇 배인 투자처는 현재 스팩이 유일하다는 분석이다. 이경준 혁신투자자문 대표는 “스팩 공모주 청약은 원금이 보장되고, 합병에 따른 기대 수익이 크다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기대수익이 낮아진 일반 공모주보다 장점이 크다는 분석이다. 실제 SK바이오사이언스, SK아이이테크놀로지 등 올해 새내기주는 작년 인기 공모주와 같은 수익을 내지 못했다. 22일 상장을 앞둔 크래프톤은 공모가 고평가 논란에 휘말리기도 했다. 8개 스팩 상장 대기 중상장을 앞둔 종목을 눈여겨볼 만하다. IBKS제16호스팩은 거래소 심사 승인을 받아 증권신고서 제출을 앞두고 있다. 유진스팩7호, 대신밸런스제10호스팩 등 7개 스팩은 상장심사를 청구해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스팩은 일반 공모주와 달리 주관사 증권계좌를 통해서만 청약이 가능하다. 예컨대 유진스팩7호에 청약하기 위해서는 유진투자증권 계좌가 있어야 한다. 공모가는 모든 스팩이 2000원으로 동일하다.
공모주 청약이 아닌 장내 투자는 주의해야 한다. 주가가 오르면 합병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스팩 특성상 급등세가 무한정 지속될 수 없다. 주가가 2300원만 넘어도 합병이 어렵다는 분석도 있다. 고점에서 매수했을 경우 손실이 상당할 수 있다.
주관사와 발기인은 공모주를 액면가(500~1000원)에 받는 대신 지분을 처분하지 못한다. 합병 기업을 못 찾으면 운영비용, 기업 물색비용 등을 손해 보고 스팩을 청산해야 한다. 이 때문에 최근 스팩주 급등을 긍정적으로만 보지 않고 있다.
박의명 기자 uimy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