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5시까지 술 팝니다"…'긴급사태 매너리즘' 빠진 도쿄 [정영효의 인사이드재팬]

입력 2021-07-14 14:03
수정 2021-07-14 14:06

도쿄에 4번째 긴급사태가 내려진 지 이튿날인 지난 13일 오전 출근시간대 신바시역 광장은 출근 인파로 북적였다. 굳은 표정으로 일터로 향하는 직장인들의 모습에서 코로나19 방역을 위한 긴급사태 중이라는 분위기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40대 남성 직장인은 "긴급사태 매너리즘이랄까, 아무튼 너무 익숙해졌다"며 "긴장감이 없으니 평소와 달라질 것도 없다"고 말했다.

도쿄의 긴급사태는 오는 8월22일까지다. 이 날을 기준으로 도쿄도민들은 올해의 86%를 긴급사태와 준(準) 긴급사태인 만연방지 등 중점조치 기간하에서 보내게 된다. 평시는 24일에 불과하다.

긴급사태 매너리즘에 빠진 도쿄도민들의 행동양식은 통계로도 나타난다. NTT도코모의 핸드폰 위치정보 분석에 따르면 긴급사태 첫날인 12일 도쿄역, 신주쿠역, 시부야역, 신바시역, 긴자역 등 도쿄 주요 도심의 인파는 2주전에 비해 2% 줄었다. 사실상 변화가 없었다는 뜻이다.

1차와 2차 긴급사태가 선포됐을 때 도쿄 주요 도심의 인파는 29%, 20%씩 줄었었다. 3차 긴급사태 부터는 거의 변화가 없다. 오전 8시 기준 도쿄역 앞의 인파는 앞선 3차례의 긴급사태 첫날 에 비해 17~40% 늘었다. 도쿄와 함께 긴급사태가 선포된 오키나와에서는 그동안 휴업 중이던 인기 관광지 츄라우미수족관이 재개장했다.

일본 정부와 도쿄도의 주류제공 중지 요청을 정면으로 거부하는 음식점도 늘고 있다. 첫날 저녁 '직장인의 성지' 신바시에는 영업제한 시간인 8시를 넘겨 문을 열고 술을 파는 가게가 적지 않았다. "11시까지 영업합니다", "새벽 5시까지 술 팝니다"라고 버젓이 써 붙인 가게도 있었다.

음식점 주인들은 이렇게라도 영업을 하지 않으면 더 이상 버틸 수가 없다고 입을 모았다. 정부가 휴업요청을 따르는 가게에 보조금을 지급한다지만 액수도 적고, 지급시기도 너무 늦다는 것이다.

앞선 3차례의 긴급사태 때는 정부 방침을 충실히 따랐던 나카노구의 노포 이자카야 다이니치카라슈조(第二力酒藏)도 이번에는 문을 열었다. 구로다 데쓰로 점장은 테레비도쿄 인터뷰에서 "현재 상태라면 종업원의 30%를 정리해고해야 할 판"이라며 "노포로서 솔선수범해야 한다는 점은 잘 알지만 경영상 버틸 수 없다"고 말했다.



니시무라 야스토시 경제재생담당상은 최근 기자회견에서 주류제공 중지나 휴업 요청을 따르지 않는 가게는 거래 금융회사를 통해 압박을 가하겠다고 밝혔다. 비난 여론이 거세자 하루 만에 발언을 철회했지만 일본 정부의 보이지 않는 압박은 계속되고 있다.

내각관방과 재무성, 경제산업성, 금융청, 국세청 등이 주류도매조합에 정부의 요청을 따르지 않는 음식점과 거래를 중단하도록 압력을 넣은 문서가 공개되자 전국소매주류조합중앙회가 12일 자민당을 항의 방문했다.

뚜렷한 법적 근거도 없이 개인의 자유를 제약한다는 비판이 거세지자 올 가을 총선거를 앞둔 일본 정부는 14일 이 같은 압박을 중단하기로 했다.

일본 정부가 술 판매를 중지시키는데 목을 매는 것은 심야시간대의 유흥가가 코로나19 감염의 온상이라는 지적 때문이다. 마쓰모토 데쓰야 국제의료복지대학 주임교수는 "주류를 판매하는 음식점을 제한하지 않고서는 확진자수를 줄일 수 없다"고 말했다.

이미 도쿄에서 코로나19 제5차 유행이 시작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현재 도쿄의 코로나19 재확산세가 지난 4월 오사카의 상황과 빼다박았다는 것이다. 당시 오사카에서는 매일 1000명 이상의 확진자가 나오고 중증환자가 급증해 한때 의료체제가 일시적으로 붕괴됐다.

전날 도쿄에서는 830명의 신규 감염자가 확인됐다. 24일 연속으로 확진자가 1주일전 같은 요일보다 늘었다. 특히 아직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하지 못한 40~50대를 중심으로 중증환자가 급증하는 추세다. 7일 기준 도쿄도 입원환자 1673명 가운데 40~50대가 39%를 차지했다.

긴급사태의 장기화로 생활에 대한 제약이 커질수록 9일 앞으로 다가온 도쿄올림픽에 대한 일본인의 반감은 커지고 있다. 방역을 명분으로 술 한잔 마실 자유까지 빼앗으려 들면서 올림픽은 왜 특별취급하냐는 것이다.

요미우리신문이 13일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 내각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53%로 작년 9월 정권 출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지율(37%)과 격차도 16%포인트로 벌어졌다. '긴급사태 선포의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응답이 56%에 달했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