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영세 소상공인들의 호소는 메아리 없는 외침이었다. 내년도에 적용할 최저임금이자 문재인 정부의 마지막 최저임금은 올해보다 5.0%(440원) 오른 9160원(시급 기준)으로 결정됐다. 문재인 정부 초반 2년간 30% 가까이 오른 최저임금에 코로나19 직격탄까지 맞은 영세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은 최저임금 동결이나 인하를 요청했지만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최저임금위원회는 12일 밤,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제9차 전원회의에서 2022년도 적용 최저임금을 결의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중소기업중앙회, 소상공인연합회는 12일 공동성명을 내 “최근 코로나19 4차 대유행과 델타 변이 확산으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되면서 소상공인과 영세 중소기업들은 하루하루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며 “최저임금의 가파른 인상까지 겹치며 지난해 중소기업 일자리 30만 개가 사라져 청년 구직자들도 최저임금 동결 또는 인하를 희망하고 있다”라고 호소했다. 하지만 최저임금위원회는 이들의 목소리를 외면했다.
박준식 위원장을 포함한 최저임금위원회 공익위원들이 12일 오후 7시경 최저임금 심의 촉진 구간으로 9030~9300원(3.6~6.7%)을 제시하면서 최저임금 논의가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이날 오후 3시께 2차 수정안이 제시됐고, 불과 2시간이 채 되지 않아 3차 수정안이 나왔다. 최저임금위원회 안팎에선 공익위원단이 노사 양쪽을 향해 수정안에 대한 강한 압박을 가했다는 소식이 들려 왔다.
하지만 공익위원들이 제시한 촉진 구간이 일부 근로자 위원과 사용자 위원들을 자극했다. 공익위원들은 “촉진 구간 안에서 원하는 금액을 제시하라”고 요구했지만 민주노총 근로자 위원 전원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없는 금액"이라며 회의장을 뛰쳐나갔다. 곧이어 사용자 위원들도 입장문을 발표하고 전원 퇴장을 선언했다. 결국 남은 한국노총 근로자 위원들과 공익위원들 만으로 표결이 진행됐고 재적위원 27명에 출석 23명, 찬성 13명에 기권 10명으로 2022년도 최저임금은 결정됐다.
전원회의를 앞두고 노사 간 신경전이 치열했다. 류기정 한국경영자총협회 전무는 “2018년부터 2년 동안 무려 30%에 가까운 수준으로 최저임금이 급격하게 인상됐다”며 “자영업자 비중이 25%에 달할 정도로 최고 수준인 우리나라 경제에서 최저임금이 또 오르면 도저히 감내할 수 없는 상황이 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태희 중소기업중앙회 본부장도 “영세 기업인과 소상공인들은 (최저임금 인상에 대해) 불만을 넘어 분노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내년 최저임금 결정이 이분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아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반면 이동호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사무총장은 경영계가 20원 인상한 1차 수정안을 낸 것에 대해 “시급 20원 인상이면 한 달 4000원이 더 생기는 건데 이 돈으로 무엇을 할 수 있나”라며 “차라리 동결안을 냈다면 이런 허탈감은 들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희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부위원장도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은 물거품이 됐다”며 “현장에서는 문재인 정부의 최대 사기 공약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고 했다.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을 위한 이번 심의는 상당한 '속도전'이었다는 평가다. 9차 전원회의 개시 약 9시간 만에 2022년도 최저임금이 모습을 드러냈다. 일부 위원들의 퇴장도 있었지만 결정 과정이 상당히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통상 최저임금위원회는 4월 상견례를 겸한 1차 회의 이후 6월말이나 돼서야 본격적인 심의에 돌입한다. 이후 수차례 심야 회의를 거듭하면 노동계와 경영계 중 어느 한 쪽이 퇴장하는 등 파행을 겪다 7월 중순 특정일의 새벽녘에 결정돼왔다. 하지만 이번 최저임금 심의는 12일 9차 회의 이전에 단 한번도 이렇다 할 심도 깊은 논의가 없었다. 결국 공익위원안이 사전에 결정된 것이었다는 경영계의 불만이 터져나오는 이유다.
경총은 “벼랑끝에 몰려있는 소상공인과 중소·영세기업들의 현실을 외면한 공익위원들의 최저임금 인상안에 대해 사용자위원들은 충격과 무력감을 금할 수 없다”며 “금번 최저임금 결정으로 파생되는 모든 문제에 대한 책임은 경제현실을 외면한 채 이기적인 투쟁만을 거듭한 노동계와 이들에게 동조한 공익위원이 져야 할 것”이라고 노동계와 공익위원을 성토했다.
곽용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