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의 세계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기업 TSMC와 아이폰 위탁생산업체 폭스콘이 화이자·바이오엔테크 백신의 대만 내 독점 공급권을 가진 중국 제약사를 통해 1000만회분의 백신을 구매했다고 대만 언론이 12일 보도했다. 양사는 지난달부터 대만 정부를 대신해 백신 확보 협상을 추진해왔다.
중국시보와 연합보 등에 따르면 중국 제약사 푸싱의약그룹은 전날 저녁 TSMC와 폭스콘 창업자 궈타이밍 측과 화이자·바이오엔테크백신 1000만회분의 판매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계약 당사자는 푸싱의약그룹의 자회사인 푸싱실업, TSMC, 폭스콘과 궈타이밍이 세운 융링교육자선기금회, 다국적 의약품 유통 회사 쥴릭파마라고 푸싱실업은 전했다.
대만언론은 지난 2일 푸싱실업과 대만의 민간조직이 백신 구매 가계약을 맺었고 9일 세부 계약 사항을 확인한 후 정식 계약을 체결했다고 보도했다. 백신 1회분 가격은 33달러(약 3만7000원)로 계약 절차가 모두 완료되면 초도 물량이 오는 9월 말에 도착할 것이라고 전했다.
TSMC와 폭스콘 측은 이번 백신 구매과 관련한 부대비용이 각각 1억7500만달러(약 2004억8000만원)를 넘지 않을 것이라며 기부 대상은 행정원 위생복리부 질병관제서라고 밝혔다.
우구르 사힌 바이오엔테크 최고경영자(CEO)는 "바이오엔테크가 개발한 백신이 대만의 전염병 예방과 통제에 긍정적 역할을 할 수 있게 돼 기쁘다"면서 "이번에 공급되는 백신은 유럽 공장에서 생산하는 코로나 백신"이라고 밝혔다.
궈타이밍 창업자는 12일 페이스북에 "이번 백신 기부를 위한 구매 상담 기간 동안 중국 정부 당국의 어떠한 지도나 간섭도 없었다"고 밝혔다.
앞서 대만 정부는 지난달 이들 기업에 백신 구매 협상 권한을 공식 부여했다. 당초 백신을 직접 구매하기 위해 바이오엔테크와 직접 협상을 벌였지만 백신을 구매하진 못했다. 차이잉원 대만 총통은 당시 "바이오엔테크와 계약 체결이 임박했었지만 중국 개입으로 성사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중국 정부는 대만 측 주장을 부인하면서도 "대만은 푸싱제약을 거쳐서만 백신을 구매할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는 중국이 대만을 자국 영토의 일부로 간주하며 독립적 주권을 인정하지 않는 '하나의 중국' 기조에 따른 것이다. 푸싱실업 역시 이날 발표한 성명에서 대만을 '대만 지역'이라고 언급하며 이 원칙을 재차 강조했다.
올 초까지만해도 방역 선진국으로 평가받던 대만에서는 지난 5월부터 코로나가 재유행하고 있다. 재유행이 본격화된 5월17일부터 6월6일까지 신규 확진자 수는 300~500명대를 오갔고 이 기간 일일 사망자 수도는 20~30명에 달했다. 이날 기준 대만의 누적 확진자와 사망자 수는 각각 1만6249명, 740명으로 집계됐다.
백신 접종 상황은 더 심각하다. 현재 대만에서 2차까지 백신 접종을 완료한 인구는 전체의 0.26% 수준에 불과하다. 대만 정부가 6월 초까지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 87만회분을 확보하는 데 그쳐서다. 이후 일본과 미국이 각각 124만회분과 75만회분의 백신을 지원한다고 밝혔지만 상황은 별반 달라지지 않고 있다.
강경주 한경닷컴 기자 quraso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