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초 미국의 마이크론이 10나노(㎚, 1㎚=10억분의 1m)급 4세대(1a) D램 기술을 개발했다고 발표했을 때 반도체 업계에선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납품이 가능한 수준의 기술인지, 전자가 흐르는 회로의 너비인 선폭은 정말 1a(15㎚ 미만)가 맞는지 알 수 없다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지난달 마이크론이 4세대 D램을 양산했다고 발표하면서 AMD와 에이서에 납품중이라고 밝혔지만 의구심을 완전히 걷어내지 못했다.
이번엔 SK하이닉스다. 이 회사는 10㎚급 4세대 미세공정을 적용한 8Gbit(기가비트) LPDDR4 모바일 D램의 양산을 이달 초 시작했다고 12일 발표했다. 극자외선(EUV) 노광공정을 활용해 4세대의 벽을 넘었다는 것이 회사 측 설명이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D램 신제품은 올해 하반기 중 스마트폰 제조사들에게 공급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SK하이닉스가 D램에 EUV 공정 기술을 적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업계에서는 SK하이닉스가 이번에 실제 양산에 활용할 수 있을 정도로 EUV 공정 수율을 끌어올렸다고 보고 있다. 마이크론의 4세대 D램은 EUV 공정 없이 불화아르곤(ArF) 포토레지스트 공정만으로 만들어진다.
4세대 D램은 웨이퍼 당 생산성이 높다. 이전 세대(1z) 같은 규격 제품보다 웨이퍼 한 장에서 얻을 수 있는 D램의 양이 25%가량 많다. 신제품은 LPDDR4 모바일 D램 규격의 최고 속도(4266Mbps)를 안정적으로 구현하면서도 기존 제품 대비 전력 소비가 약 20% 적다. LPDDR4는 현재 D램 시장 비중의 75%를 차지하고 있는 규격이다. 지난해 10월 세계 최초로 출시한 차세대 D램인 DDR5에는 내년 초부터 1a 기술을 적용할 계획이다.
이번에 SK하이닉스가 뛰어들면서 비로소 4세대 D램이 상용화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일반적으로 국내 기업들은 수율이 어느정도 올라왔을 때 신기술을 발표하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SK하이닉스는 수율 95%, 마이크론은 70~80% 수준에서 양산을 시작한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 1위 삼성전자는 LPDDR4를 건너뛰고 가장 최신 규격인 DDR5 D램부터 4세대 공정을 적용할 방침이다. 1a 등으로 두루뭉술하게 선폭을 표현하는 업계 관행을 깨고 선폭을 14나노로 정확히 공개하기로 했다.
반도체 전문가들은 기술 리더십의 관건을 EUV 공정 기술로 보고 있다. EUV 공정은 초기 투자비용이 상당지만 불화아르곤을 쓸 때보다 공정을 줄일 수 있다. 수율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올라서면 EUV 공정이 훨씬 유리하다는 설명이다. SK하이닉스가 2025년까지 EUV공정에 4조7549억원을 투자하기로 한 것도 이 때문이다.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장)는 "삼성전자는 2019년부터 EUV공정을 도입했고, SK하이닉스도 이번 4세대 D램을 통해 EUV공정 기술력을 증명했다"며 "반면 마이크론은 2023년께 EUV기술을 활용한 D램 양산에 들어갈 계획이기에 향후 몇 년 간 고전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수빈 기자 ls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