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다이아몬드의 명암

입력 2021-07-11 17:27
수정 2021-08-23 09:52
지난달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한 벌판에 수천 명의 인파가 몰렸다. 다이아몬드가 발견됐다는 소문을 듣고 달려온 이들은 삽과 곡괭이로 흙을 파헤쳤다. 그러나 땅에서 나온 것은 다이아몬드가 아니라 석영이었다.

진짜 다이아몬드는 이웃 나라 보츠와나에서 발견됐다. 그것도 야구공보다 큰 1098캐럿짜리와 1174캐럿짜리가 잇달아 나왔다. 2년 전 채굴된 세계 2위 다이아몬드(1758캐럿)에 이어 3~4위 기록을 새로 썼다. 역대 최대 크기는 1905년 남아공에서 발견된 3106캐럿짜리로, 영국의 왕관 등에 사용됐다.

‘보석의 황제’ 다이아몬드는 지구에서 가장 단단한 광물이다. 지하 120~250㎞에 있는 원석이 화산활동으로 지표 가까이 올라와야 캘 수 있다. 어원은 ‘정복할 수 없다’는 뜻의 그리스어 ‘아다마스’다. 그만큼 희소가치가 높다.

다이아몬드가 결혼 예물로 쓰인 것은 약 500년 전부터다. 17세기 이탈리아에서 연마법이 개발된 뒤 수요가 급증했다. 다이아몬드 자체는 무색투명하지만, 장인의 세공을 거치면 형언할 수 없이 아름다운 광휘를 낸다. 그래서 부와 권위의 상징으로 쓰인다. 이 때문에 뺏고 빼앗기는 전쟁도 벌어진다.

아프리카 서부 시에라리온에서는 반군의 돈줄로 악용되는 바람에 ‘피의 다이아몬드’로 불렸다. 1961년 영국에서 독립한 이 나라는 풍부한 자원 덕에 발전 가능성이 높았지만, 1972년 968.9캐럿 다이아몬드 원석이 발견된 이후 ‘자원의 저주’에 빠졌다. 다이아몬드를 차지하려는 권력 투쟁 끝에 내전이 발발해 인구 450만 명 중 35만 명이 죽고 나라는 최빈국으로 전락했다.

이보다 5년 늦게 독립한 보츠와나는 정반대였다. 다이아몬드 등 천연자원으로 마련한 자금을 경제개발에 투입하면서 사회 인프라와 교육, 의료체계를 정립했다. 20여 년에 걸친 부패방지 노력과 정치적 안정으로 모범적인 민주주의를 실현했고, 1인당 국민소득도 1만7000달러를 넘어섰다.

대런 에쓰모글루와 제임스 로빈슨은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서 두 나라를 예로 들며 “국가적 시스템은 경제적 요인에 정치적 선택이 더해질 때 완전히 달라진다”고 지적했다. 같은 다이아몬드 생산국인 두 국가의 운명은 이렇게 엇갈렸다. 보석의 광채가 찬란할수록 그 그림자는 길고 어둡다는 걸 보여주는 역사의 한 단면이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