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1960년대부터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비롯해 강력한 수출 드라이브 정책을 통해 제조업을 육성해 왔다. 특히 기업인들이 불굴의 기업가 정신을 발휘해 키워온 조선, 철강, 자동차, 반도체 업종의 일류 제조기업을 바탕으로 국민소득 3만달러,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에 이르렀다. 이제 우리 제조업은 국내총생산(GDP)의 25%, 총고용의 16%를 책임지고 있으며, 코로나19 같은 위기 시마다 경제 회복을 견인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국제적으로도 한국 제조업은 높은 경쟁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최근 유엔산업개발기구(UNIDO)가 각국의 1인당 제조업 부가가치, 제조업 수출액 등을 지수화한 제조업 경쟁력 순위에서 독일, 중국에 이어 세계 3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바이오, 2차전지, 전기차 등 분야에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발굴해 내며 제조업 강국의 면모를 과시하고 있다. 금년에도 제조업의 수출확대에 힘입어 4%대의 경제성장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처럼 우리 제조업은 외관상으로는 양호한 평가를 받고 있는데, 좀 더 깊게 바라보면 고민하고 해법을 찾아야 할 문제가 많다. 오랫동안 우리 주력산업이던 조선, 철강, 정유화학 등은 최근 상당기간 매출 부진이 지속되고 있다. 그나마 업황이 괜찮은 반도체는 미국, 중국, 대만 등 경쟁국들이 자국 반도체산업 육성에 나서고 있어 앞으로 치열한 각축을 벌여야 하는 상황이다.
제조업을 떠받치는 소재·부품·장비 산업의 경쟁력도 취약하다. 2019년의 일본 수출규제를 계기로 ‘소부장’의 자립화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2018년까지만 해도 제조업의 소부장 자체조달률은 60%대에 머물렀고, 특히 반도체는 30%도 안 됐다. 소부장 산업이 취약한 상황에서 국가 간 무역분쟁이라도 발생하면 생산 차질이나 수출 지연 같은 타격을 입을 수 있기 때문에 일정 수준 이상의 자립화는 반드시 필요하다. 정보통신기술(ICT)·소프트웨어(SW), 생명보건의료, 우주·항공·해양 같은 첨단 분야의 기술력은 중국보다도 낮은 수준으로, 하루빨리 쫓아가지 못하면 고부가가치 제품 시장을 해외 기업들에 내줄 가능성이 높다.
과도한 정책 리스크와 징벌적 규제도 문제다. 최근 최저임금이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뿌리산업을 비롯한 중소·제조업계의 인건비 부담이 높아져 경쟁력이 약화됐다. 근로시간을 주 52시간으로 제한하는 규제로 인해 대다수 중소영세기업들은 생산 감소나 인력난에 더 시달릴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내년에 시행될 중대재해처벌법은 세계에서 유례없이 책임을 기업에만 전가하고 있으며, 미래 투자나 사업 재편을 고민해야 하는 최고경영자들을 회사 대신 법원으로 출근하게 만들 것이란 비판도 받고 있다. 최근에는 친노조 편향정책에 편승해 자동차, 조선 등 기간 제조업에서 파업이 확대돼 생산차질과 경쟁력 약화가 우려된다.
이제 반도체, 바이오 같은 제조업이 국가 안보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시대가 왔다. 또 기후변화에 대응해 탄소중립 부담이 커져 제조업의 산업구조 개편이 필수적이다. 정확한 현실 진단과 함께 국가의 제조업 포트폴리오를 고려해 미래산업을 육성하는 중장기적 접근이 필요하다.
독일(인더스트리 4.0)과 중국(중국제조 2025)을 비롯해 영국, 일본 그리고 미국 등이 첨단 제조업 육성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만큼, 우리도 4차 산업혁명, 디지털 경제 등 환경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기존 주력산업 혁신과 신산업 육성을 위한 규제 완화와 지원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또 국내 소부장 산업의 경쟁력을 키워 자생적 공급망을 구축하는 한편 연구개발(R&D) 지원을 강화해 앞선 기술력에 기반한 제조업 고부가가치화에도 힘써야 한다. 무엇보다도 정부와 정치권은 규제개혁을 강력히 추진하고 정책의 불확실성을 없애 기업들이 마음 놓고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