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탐사보도매체인 프로퍼블리카는 지난달 8일 미 국세청(IRS)의 미공개 자료를 입수해 미국 최상위 부자 25명의 자산이 2014~2018년 4010억달러 늘었지만, 같은 기간 납부한 연방소득세는 136억달러에 불과했다고 보도했다. 백악관 대변인은 해당 자료를 유출한 것은 불법이라고 지적하면서 “미 연방수사국(FBI)과 조세당국이 조사를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이 사건을 맡는 연방 검사는 아마도 프로퍼블리카가 지난 10년간 수천 명의 납세 기록이 담긴 서류를 훔친 것을 정당화하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프로퍼블리카는 “우리가 확보한 미공개 자료 덕분에 슈퍼 리치들이 효과적으로 납세 시스템을 피해가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고 주장하고 있다. 누명 씌우는 프로퍼블리카과연 그럴까. 프로퍼블리카는 ‘효과적으로 피한다’는 표현을 썼다. 그런데 이는 어찌 됐든 법을 준수한다는 것을 뜻한다. IRS 기록은 부자들이 수십억달러는 아닐지라도 매년 늘어나는 소득 중 극히 일부를 소득세로 납부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하지만 프로퍼블리카는 납세 의무가 없어 세금을 내지 않는 사람들을 향해 ‘세금을 회피한다’는 표현을 쓴 것이다. 이 논리에 따르면 비과세 활동에 참여하는 누구나 탈세자가 된다.
프로퍼블리카는 “모든 사람이 합당한 몫을 지불하고 부자들이 세금을 많이 낸다는 미국 조세제도의 신화가 무너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과도하게 부풀려진 견해다. 정치인들은 늘 세법을 비판한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세법이 인류의 수치”라고 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도 지난 4월 의회 연설에서 다른 어떤 것보다 세법의 불공정성에 대해 많은 말을 했다.
재판에서 불리한 상황으로 몰리면 프로퍼블리카는 “세금 납부가 뉴스거리가 돼서 입수한 자료를 썼다”고 주장할 것이다. 또 미국인들이 세금을 내지 않는다는 점을 밝히기 위해 훔친 기록들이 필요했다고 강조할 것이다.
프로퍼블리카는 “입수한 납세자 정보에 소득과 세금뿐만 아니라 투자, 주식 거래, 도박, 회계감사 결과까지 담겨 있다”고 기뻐했지만 이는 상당히 어리석은 일이다. 납세자들이 IRS에 제출하는 회계감사 자료까지 불법으로 추적했다는 점이 드러나면 문제가 될 수 있다. 프로퍼블리카는 누가 납세자 정보를 훔쳤는지 모른다고 주장하고 있다. 범죄 눈감아주는 美 국세청저널리즘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법을 위반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 프로퍼블리카는 누군가가 빼돌린 미국의 납세 자료를 무차별적으로 찾아내 일종의 거대한 쇼핑을 했다. 프로퍼블리카는 범죄를 신고하는 것보다 범죄에 가담하면 더 많은 혜택을 받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들은 터무니없이 IRS를 비판하려는 속내를 드러내고 있다.
궁금한 점이 하나 있다. 프로퍼블리카는 왜 IRS에 신고하지 않았을까. 개인 납세자 수천 명의 기밀 정보가 세상에 공개됐다고 IRS에 알려야 하지 않았을까. 프로퍼블리카가 언급한 사람은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립자와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워런 버핏 벅셔해서웨이 회장뿐이다. 프로퍼블리카는 이들의 이름을 언급하는 게 유용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IRS를 불법 방조범으로 여겨야 하나.
정리=정인설 기자
이 글은 홀맨 젠킨스 WSJ 칼럼니스트가 쓴 ‘The IRS Is ProPublica’s Accessory’를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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