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 회장의 유족이 기증한 미술품을 전시하는 ‘국가기증 이건희 소장품관’(이건희 기증관) 건립 후보지가 서울 용산과 송현동으로 압축됐다. 정부는 기증품 2만3000여 점에 대한 조사·등록 절차를 마친 뒤 기증관 건설에 착수해 이르면 2027년께 미술관을 개관한다는 계획이다.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같은 내용의 ‘국가기증 이건희 소장품 활용 방안’을 발표했다. 핵심은 이건희 기증관을 서울에 짓는다는 것. 황 장관은 “국민들이 수준 높은 미술품을 접하고 문화를 향유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게 고인과 유족의 의도”라며 “접근성을 고려해 서울에 미술관과 박물관이 통합된 형식의 ‘뮤지엄’을 짓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방안은 미술 전문가와 문체부 관계자 등으로 구성된 ‘국가기증 이건희 소장품 활용위원회’의 논의 끝에 결정됐다.
이건희 기증관은 서울 용산동 국립중앙박물관과 용산가족공원 사이 부지, 혹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인근의 송현동 땅 중 한 곳에 들어서게 된다. 김영나 위원장은 “2만3181점에 달하는 기증품을 보존, 전시하기 위해서는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의 경험과 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동서양 그림은 물론 고문서와 도자기, 조각, 공예품 등 다양한 종류의 기증품을 제대로 관리하기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설명이다. 문체부는 관계기관 및 각 지방자치단체와의 협의 등을 거쳐 올해 건립 부지를 최종 선정키로 했다.
이건희 기증관 개관은 2027~2028년께 가능할 전망이다. 건립비용은 1000억원 이상 들 것으로 추산된다. 민병찬 국립중앙박물관장은 “2023년 조사를 마치고 설계와 건축 등을 거치면 완공은 2027년이나 2028년 정도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건희 컬렉션의 주요 작품들은 당장 오는 21일부터 만나볼 수 있다. 이날 국립중앙박물관은 2층 서화실에서, 국립현대미술관은 서울관 1층에서 ‘국가기증 이건희 소장품 특별 공개전’을 동시에 개막한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선 ‘정선 필 인왕제색도’를 비롯한 유물 70여 점이 소개되고, 국립현대미술관에는 김환기 박수근 이중섭 등의 한국 근대미술 대표작 60여 점이 걸린다. 내년 4월에는 두 기관이 한 공간에서 기증 1주년 기념 특별전을 열 예정이다. 삼성미술관 리움과 지방 박물관·미술관의 소장품을 가져와 함께 전시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정부가 송현동과 용산을 이건희 기증관 건립 후보지로 정하면서 서울시와 용산구는 적극 협력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하지만 이건희 기증관 유치 경쟁에 뛰어들었던 전국 30여 곳의 지자체는 일제히 강력 반발했다. 황 장관은 “내년 하반기부터 연 3회 이상 지역별 순회 전시를 추진하는 등 각종 전시를 기획해 지역에서도 기증품을 충분히 관람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