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제철이 자회사를 세워 사내 협력사 직원 7000여 명을 직접 채용한다는 발표가 나온 지난 6일 저녁. 한 대기업 간부는 한숨을 내쉬었다. 현대제철의 ‘결단’이 몰고 올 후폭풍을 그는 걱정했다. 협력사 직원 채용은 ‘옳고’, 기존 협력업체 유지는 ‘틀리다’는 이분법적 여론이 형성되진 않을까 우려했다.
현대제철이 협력사 직원을 채용하기로 한 직접적 계기는 2019년 초 나온 국가인권위원회의 정규직 비정규직 차별 시정 권고 조치다. 급여와 복지에서 현대제철 정규직과 협력사 비정규직 간 현격한 차이를 좁히라는 취지였다. 물론 직접 채용하라는 의미는 아니었다. 소속이 문제가 아니라, 처우의 차별을 시정하라는 게 인권위 권고의 핵심이었다. 현대제철은 그 ‘해법’을 내부 채용에서 찾은 것이다.
하지만 협력사 직원 직고용이 모든 문제를 풀 ‘만능열쇠’가 될 순 없다. 같은 업종 내 포스코는 협력사 형태는 그대로 두면서 처우를 개선하고 상생을 강화하는 식으로 문제 해결에 나섰다. 포스코는 지난달 포항·광양지역 협력사 노사 대표들을 초청해 ‘상생발전 공동 선언식’까지 열었다. 협력사 직원의 근무여건 개선, 임금 격차 해소, 복리후생 개선 등과 같은 주요 내용이 선언문에 모두 포함됐다. 아쉽게도 이런 노력은 별로 부각되지 않았다. 현대제철의 직고용 발표 이후 포스코에는 ‘협력사 직원을 직접 채용할 것이냐’는 질문이 쇄도하고 있다. 현대중공업 현대모비스 한국GM 등에도 비슷한 문의가 이어졌다고 한다.
‘노노갈등’ 우려도 상존한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기존 정규직이 반발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인천국제공항공사가 비정규직을 직접 고용한 일명 ‘인국공 사태’가 대표적이다. 힘들게 시험 봐서 들어간 공사 직원들과의 형평성 문제가 제기됐다. 논란은 지난 4일 법원이 ‘문제없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려 일단락됐다. 하지만 ‘제2의 인국공 사태’는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는 게 산업계의 우려다.
기존 협력사 경영자에 대한 배려도 논의 과정에서 빠졌다. 이번 현대제철 채용과 연계된 협력사는 20여 곳이다. 이들 협력사를 운영하는 경영자로선 하루아침에 회사의 존망을 걱정해야 할 처지가 됐다. 사전 협의가 있었다고 하나 반발이 아예 없을 순 없다. 특히 대기업 제조 협력사들은 한 곳에 일감을 의존하는 일이 많아 다른 일을 할 수도 없다.
현대제철의 이번 채용 결정은 박수받을 일이다. 다만 이를 모든 기업이 따라야 한다는 일각의 주장은 우려스러운 게 사실이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돼 있다’는 말을 되새겨봐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