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이민 2세가 창업한 미국 스타트업이 심장 질환을 조기에 진단할 수 있는 인공지능(AI) 솔루션을 개발했다. 컴퓨터단층촬영(CT) 이미지를 분석하는 이 솔루션은 심장 질환 전문의가 아닌 일반 주치의나 임상의도 쉽게 활용할 수 있다는 혁신성을 인정받아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를 받은 데 이어 최근 대규모 투자도 이끌어냈다.
디지털 의료 스타트업 클리어리(Cleerly)의 제임스 K 민 대표(사진)는 6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AI를 활용해 몇 분 만에 진단이 가능한 개인 맞춤형 심장 질환 진단 솔루션 ‘정밀 예방(Precision prevention)’을 개발해 지난달 4300만달러(약 487억원)의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민 대표는 2017년 클리어리 창업 이전 미국 코넬대 의과대 교수, 달리오 심혈관이미징 연구소 회장, 심혈관 CT학회 대표 등을 지낸 심장 질환 전문가다. 이번 투자 유치로 클리어리의 누적 투자 유치액은 5400만달러(약 612억원)로 늘어났다.
클리어리의 ‘정밀 예방’은 비침습적 관상동맥 CT 혈관 조영술을 활용한다. 촬영된 관상동맥 형태를 AI가 분석해 개인의 심혈관계 질환 존재, 범위, 심각도 및 유형을 식별하는 방식이다. 기존 심장 질환 조기 진단 솔루션이 콜레스테롤 등의 지표와 심장 이미지 분석 등에만 의존하는 것과 달리 이 솔루션은 개인이 겪고 있는 질병 특성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맞춤형 치료법까지 제공한다는 점에서 혁신성이 높다는 평가다.
이런 진단법이 가능한 건 클리어리가 확보한 심장 질환 연구 빅데이터 덕분이다. 민 대표는 “심장마비를 예방할 수 있는 임상 도구를 개발하기 위해 코넬대 등에서 15년간 매일 임상시험을 했고, 지금까지 5만 명 이상의 환자 데이터를 확보했다”고 소개했다.
이렇게 확보된 데이터는 심장 질환 특성화를 위한 이미지 분석을 돕는 AI와 결합해 ‘고도화된 심장 질환 조기 진단 솔루션’으로 발전했다. 민 대표는 “전문의뿐 아니라 일반 의사와 임상의도 클리어리의 솔루션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개발돼 진단을 더 빨리 내릴 수 있다는 게 강점”이라고 강조했다.
민 대표는 심장 질환을 ‘조용한 살인자(silent killer)’로 비유했다. 그는 “매년 65만 명의 미국인이 심장 질환으로 사망하는데, 이 중 약 60%는 특별한 증상이 없었다”며 “조용한 살인자의 위협에서 어느 누구도 자유롭지 못하다는 얘기”라고 했다. 민 대표가 클리어리를 창업한 배경이다. 심장 질환을 좀 더 일찍, 쉽게 발견할 수만 있다면 진료비 부담도 크게 낮출 수 있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이 같은 의료체계가 구축된다면 매년 2190억달러(약 247조4260억원)의 의료비를 아낄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의료계와 투자업계도 클리어리의 행보에 주목하고 있다. 정밀 예방과 같은 심장 질환 조기 진단 솔루션이 상용화된다면 유방암, 대장암을 조기 발견할 수 있는 유방 조영술, 대장내시경 등을 잇는 ‘신기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클리어리의 정밀 예방 솔루션은 미국 현지 병원 여러 곳에서 채택해 활용하고 있다.
민 대표는 “미국에선 최근 심장 질병과 관련해 조직화한 데이터의 양이 증가하면서 AI 역할도 중요해지고 있다”며 “이 같은 데이터를 활용해 의사와 환자 등 임상 이해 관계자를 위한 첨단 솔루션을 적극 개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배성수 기자 bae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