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당시 계엄군과 DJ 측근 포함된 시민위 간 협상 진행"

입력 2021-07-06 15:35
수정 2021-07-06 15:47
5·18 민주화운동이 벌어졌을 당시 광주에서 계엄군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측근들이 포함된 시민위원회 간 협상들이 진행된 것으로 드러났다. 신군부는 당시 계엄군의 광주 재진입 결정을 미국에 사전 통보한 것으로 나타났다.

외교부는 6일 미국 정부가 같은날 비밀을 해제한 5·18 민주화운동 관련 문서 사본 21건을 공개했다. 이 중 주한 미국대사관이 1980년 5월 22일 미 국무부에 보낸 한국 관련 상황보고 문건은 “계엄사령관은 당시 광주에서 일부 김대중과 가까운 사람들이 포함된 지역 시민 위원회와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며 “우리 확인 결과 협상은 진행 중이고 (시민위) 요구는 터무니없지 않다”고 밝혔다.

문건에 따르면 협상과 관련해 계엄사령관은 “김대중 석방은 협상 대상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어 문건은 “전남부지사가 작은 규모의 학생 대표들과 만날 것이라는 첩보가 있다”며 “서울의 동아방송은 새로운 국무총리가 2만명의 광주 시민들에게 연설할 것이라고 나왔지만 그 이상의 정보는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광주에 있던 일부 선교사들이 대전으로 돌아갔는데 이들이 차량 밖에 성조기를 꽂고 시외로 달렸기 때문에 광주 밖으로 탈출할 수 있었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김종필 당시 공화당 총재가 자신은 ‘김대중 복권’을 지지한다는 뜻을 밝혔다는 내용도 공개됐다. 공개 문건에 따르면 김 총재는 1980년 1월 17일 리차드 홀부르크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 차관보와 통화하고 “정부 내에는 최규하 대통령을 비롯해 김대중의 복권에 대한 강한 반대 기류가 있지만 자신은 그의 복권을 지지한다는 입장”이라며 “계엄령이 가능한 빨리 해제돼야 한다고 생각하고 최 대통령도 같은 입장”이라고 말했다.

한편 신군부는 1980년 5월 27일 계엄군을 광주로 재투입하기 전 미국에 이같은 결정을 미리 알렸던 것으로 드러났다. 문건에 따르면 최광수 대통령 비서실장은 같은달 26일 윌리엄 글라이스틴 당시 주한 미국대사와 만나 “계엄사령관처럼 차분하고 책임감 있는 이들을 포함한 여러 군 지휘관들은 광주의 상황이 더욱 악화되지 않게 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며 “현장 지휘관인 소 중장에게 도시 재진입에 대한 재량권을 부여했고 실제 진입하기 전 서울로 통보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어 “민간인과 일부 (군) 간부들은 (광주 시민들에게) 충분히 알리고 사전 통보한 뒤 낮에 재진입하는 것을 선호했지만 이러한 방식이 저항의 강도를 키울 수 있다는 다른 주장들이 있었다”며 “군사행동은 사전 발표 없이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이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광주 재진입 결정에 대해 미국 정부 문서가 완전히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미국의 계엄군 재진입 결정에 관해 알려진 것은 1989년 미 국무부가 광주특위에 답변서를 보내며 처음 알려진 바 있다.

송영찬 기자 0fu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