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에서 ‘규모’는 중요한 요소다. 꽤 복잡한 이론도 있지만, 생산비 절감과 수익 올리기에도 규모가 큰 변수다. 규모 대비 생산비용이 덜 들 때는 ‘규모의 경제’, 더 들 때는 ‘규모의 비경제’라고도 한다. 물론 규모가 크다고 좋은 게 아니라 생산비용, 즉 효율성이 관건이다.
기업 경영에서도 가계에서도 규모의 경제가 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선택의 여지도 생긴다. 개인 재테크에서도 ‘종잣돈’ 마련은 그래서 중요하다. 뉘앙스 차이는 있지만, ‘소도 비빌 언덕이 있어야 제구실한다’는 말도 같은 맥락이다.
가계살림이든 신생기업 경영이든 경영체의 성장과 확장은 종종 ‘좁쌀굴리기’에 비유된다. 눈을 굴릴 때 처음에는 재빠르게 움직여도 늘어나는 양이 제한적이다. ‘규모의 경제’가 안 되는 것이다.
저개발 국가들이 두 자리 숫자의 경제성장률로 부지런히 달려도 번영과 풍요의 길이 먼 것 역시 아직은 좁쌀굴리기요, 개미걸음이기 때문이다. 반면 경제발전의 궤도를 제대로 탄 선진국은 성장 속도가 느려 보여도 성과는 나쁘지 않은 경우가 많다. 고성장 궤도에 진입하면서 붙는 가속도가 있다. 미국처럼 경제 규모까지 크면 체력 좋은 거인이 성큼성큼 걷는 격이 된다. 이미 커진 눈덩이는 천천히 굴려도 몇 바퀴 만에 덩치가 확 커지는 것과 같다. 개발기 때 한국처럼 매년 두 자리 숫자의 경제성장이 좁쌀굴리기라면, 선진국은 3~5%의 성장률만 이어져도 ‘호박굴리기’가 될 것이다.
미국 하반기 성장률이 7.3%에 달할 것이라는 현지 투자은행들 전망치가 나왔다. 올해 전체로는 미국 중앙은행(Fed)이 7.0%, 영국 옥스퍼드경제연구소는 7.7% 성장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지난해 기저효과를 감안해도 놀랍다. 이렇게 큰 호박을 굴리는 상황이니 테이퍼링이니 금리인상이니 하는 게 당연하다.
미국 경제는 ‘V자 회복’이라는데, 한국 경제는 ‘K자 양극화’ 걱정하기에 급급하다. 정부가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3.2%에서 4.2%로 끌어올렸지만, 미국을 보니 모자라는 느낌이다. 경제발전 수준이나 규모로 볼 때 토마토나 애호박 정도는 될 텐데, 그렇다면 이 상황에서는 굴리기 속도라도 더 내야 하지 않나. 좁쌀 경제도, 큰 호박 경제도 ‘코로나 이후’를 대비하며 달리고 있다. 아직도 백신난에 방역수칙 논란, ‘몇 시까지 몇 명은 허용’이라는 조삼모사 행정에 빠져 있으니, ‘포스트 코로나’는 마냥 남의 나라 일인가.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