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증세 아이디어 경연장 된 여당 국민면접

입력 2021-07-05 17:26
수정 2021-07-06 01:06
증세(增稅)는 전통적으로 인기 없는 정책이다. 자기 주머니의 돈을 털어 국가에 주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없다. 세금의 종류를 추가하면 정권교체까지 부른다. 유신독재 몰락의 단초가 된 1979년 부마민주항쟁의 ‘부가가치세 철폐’ 플래카드가, 2005년 종합부동산세 도입 이후 당시 집권 세력이 만 2년간 연패한 끝에 정권을 내준 것이 이를 방증한다.

그런데 지난 4일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들에 대한 ‘국민면접’에서는 각종 증세안이 등장했다. 이낙연 전 국무총리는 이른바 ‘땅부자세’를 제시했다. 토지를 많이 소유한 이들에게 세금을 걷어 무주택자에게 싸게 집을 지어줄 재원을 마련하는 게 목적이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자신을 상징하는 정책이 된 기본소득을 시행하기 위해 로봇세, 데이터세 등의 도입을 밝혔다. 로봇으로 노동인력을 대체하는 만큼 해당 기업에 세금을 부과하고, 데이터 이용에 대해서도 비슷한 방식으로 세원을 확보한다는 것이다.

증세 정책이 대부분 선거에 불리하게 작용했다는 사실에 비춰볼 때 여권의 세금 아이디어 경쟁은 이채롭다. 하지만 따져보면 이유를 알 수 있다. 세금을 더 내는 것은 기업이나 일부 자산가지만, 그에 따른 이득은 유권자 대다수에게 돌아간다는 것이 각 증세안의 공통점이다. 퍼주기 공약을 위한 이상과 재원 부족이라는 현실의 틈을 메우는 수단이 특정 기업 및 계층에 대한 증세다.

이는 의도도 불순하지만 현실성도 없다. 조세재정연구원은 지난해 12월 ‘4차 산업혁명과 조세정책’이라는 보고서에서 “로봇세가 도입되면 초기에는 세수가 늘어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세수 감소 효과를 부를 것”이라고 분석했다. 국내 기업들의 경쟁력을 떨어뜨려 일자리와 투자가 줄어드는 효과가 나타나며 세원 자체가 축소된다는 것이다. 땅부자세 역시 마찬가지다. 정부 한 관계자는 “노태우 정부 때부터 농지는 농민만 소유하도록 헌법에 못 박고, 기업의 비사업용 토지에 대해선 중과해 땅부자가 거의 남아 있지 않다”며 “세목을 신설하는 만큼의 실익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미국 경제학자 멘슈어 올슨은 저서 《지배권력과 경제번영》에서 세금을 국민에 대한 국가의 약탈행위로 전제하고 국가 지배구조를 분석했다. 한 지역에서 오랜 기간 많은 세금을 걷으려면 지역 경제를 성장시켜야 하는 만큼 치안과 사회 인프라에 투자하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가 세금 정책에 장기적 관점이 실종되면 집권세력은 떠돌아다니며 약탈하는 ‘유랑형 도적’에 머무르게 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여권 주자들의 증세 공약이 이 같은 유랑형 도적의 모습과 얼마나 다른지 짚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