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소득 1만 달러 시대에는 차를 바꾸고, 2만 달러에 집, 3만 달러 시대엔 가구를 바꾼다.”
유통업계에는 이런 통설이 있다. 미국과 유럽, 일본 등 앞서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를 넘어선 국가에서 공통적으로 홈퍼니싱(집꾸미기) 시장이 성장해서다. 사람들은 소득이 일정 수준을 넘으면 삶의 질을 높이는 데 돈을 쓴다는 의미다.
이 통설은 국내에서 코로나19 사태로 빠르게 현실이 됐다.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집콕족’들은 가전과 가구를 바꾸기 시작했다. 백화점에서 사람들이 덜 방문하는 상층부에 있던 리빙 매장도 점차 확대되고 있다.
롯데백화점이 지난달 24일 부산 오시리아 관광단지에 연 리빙 전문관 ‘메종 동부산’은 한 단계 진화한 버전이다. 가전·가구·인테리어 등 리빙을 총망라했다. 이 매장의 개장 일주일(6월 24일~7월 4일) 간 매출은 73억원. 목표치의 350%다.
‘메종 동부산’은 1만3520㎡(4090평) 규모의 리빙 특화 점포다. 옥상 펫파크 등 일부 레저시설을 제외한 공간을 리빙으로 채웠다. 백화점 업계에서 전례가 없다. 가전 양판점 롯데하이마트의 최대 매장 메가스토어 잠실점도 2248평이다.
메종 동부산에 입점한 리빙 브랜드는 35개다. 가구 브랜드가 27개로 가장 많다. 한샘, 일룸 등 국내 브랜드 외 덴마크 고가 브랜드 템퍼 등 해외 브랜드도 입점했다. 삼성·LG전자 등 가전 브랜드는 5개, 침구 등 홈데코·홈패션 브랜드는 3개다. 펫케어 업체 ‘코코스퀘어’, 스케이트 파크 ‘시루자 파크’ 등 레저시설도 3개 있다.
대부분 매장을 넓게 만들고 체험형으로 꾸몄다. 똑같은 가구를 색상별로 비교하고, 여러 소재의 침대 매트리스에 누워볼 수 있다. 집처럼 인테리어를 한 쇼룸들도 곳곳에 있다. 가장 큰 매장은 한샘의 ‘디자인 파크’. 2960㎡(896평) 규모로 가구와 인테리어, 생활용품이 들어갔다. 2~4인 가족 형태에 맞춰 각각 25평, 34평, 41평의 모델하우스를 구현했다.
동선은 인테리어-가전-가구 순으로 이어진다. 한샘 매장을 나오면 삼성전자 매장이 있고, 그 옆에 시몬스 매장이 나온다. 신혼부부가 한 층을 돌면서 집에 관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 “논현동 가구거리를 부산에 구현한 콘셉트”라는 설명이다.
백화점은 ‘돌을 갖다놔도 팔린다’고들 했다. 그만큼 장사가 잘 됐다. 2000년대 e커머스가 부상하며 상황이 바뀌었다. 사람들은 옷을 온라인으로 사기 시작했다. 백화점은 교외형 프리미엄 아울렛으로 여가를 보내는 공간을 만들어 차별화했다. 오프라인이 승부를 볼 수 있는 분야의 카테고리 킬러 매장을 만들 필요성도 제기됐다.
리빙은 백화점들이 코로나19 전부터 차세대 먹거리로 점찍은 산업이다. 신세계백화점은 2019년 타임스퀘어점의 건물 2개 중 1개를 통째로 리빙관으로 바꿨다. 현대백화점은 천호점과 디큐브시티점에 그룹 계열사 현대리바트의 경쟁사인 이케아 대규모 매장까지 들였다. 국민소득이 2017년 3만 달러를 넘으며 ‘가구를 살 때’라는 속설이 부각되면서다. 고가인 데다 정확한 크기와 색감이 중요한 가구는 인터넷으로 사기 어렵다는 장점도 있었다.
롯데백화점이 리빙 전문관을 처음 검토한 때도 2016년이다. 지난해 코로나19로 리빙 시장이 급부상하자 메종 동부산 프로젝트 조직을 구성하고, 본사 에이스인 김성환 팀장을 보내 진두지휘하게 했다. 롯데백화점은 수도권에 두 번째 메종 매장을 여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메종 동부산이 있는 오시리아 관광단지는 롯데그룹이 대규모 타운을 구축하는 지역이다. 메종 동부산 건너편에는 롯데 프리미엄 아울렛이 있고 뒤로는 롯데월드 부산이 연내 문을 연다. 롯데그룹은 오시리아가 떠오르는 번화가로 해운대 등 전통 부촌의 소비가 몰린다는 데 기대를 걸고 있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롯데몰 동부산점의 리빙 판매율이 전국 평균보다 10% 높아 부산의 리빙 수요가 크다”며 “메종 동부산에서도 해운대에서 온 소비자들이 시몬스 등 고가 가구들을 구매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부산=노유정 기자 yjr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