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사상 최대 규모의 ‘부의 이전’이 시작됐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지난 2일 보도했다. 70세 이상 미국인의 순자산은 35조달러(약 4경원)에 달하는데 이들과 베이비부머(1946~1964년생)가 자녀 세대 등에게 재산을 상속·증여하면서 ‘경제적 지각 변동’이 일어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WSJ에 따르면 미 중앙은행(Fed)의 데이터 분석 결과 70세 이상 미국인의 순자산은 지난 3월 말 기준 35조달러에 달한다. 이는 미국인이 보유한 전체 부의 27%이자 미 국내총생산(GDP)의 157%에 이르는 막대한 규모다. 미국의 70세 이상 인구는 3634만 명으로 1인당 순자산은 96만3000달러(약 11억원)다.
컨설팅업체 세룰리어소시에이츠는 ‘구세대’가 2018~2042년에 물려줄 재산은 70조달러에 이른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이 중 61조달러가 자녀 세대인 밀레니얼세대(1981~1996년생)와 X세대(1965~1980년생)에게 돌아갈 것으로 예상했다. WSJ는 “미 역사상 이처럼 거대한 부의 이전이 이뤄지는 것은 전례가 없다”며 “이로 인해 자녀 세대에서 주택 구매, 창업, 자선단체 지원 등 일련의 경제활동이 촉발되고 있다”고 했다.
미국에서 상속·증여세 면제 한도가 대폭 확대된 점도 부의 이전을 촉진하는 요인으로 분석된다. 연방정부의 상속·증여세 면제 한도는 평생 증여액과 상속액 합계 기준으로 개인은 2010년 100만달러에서 올해 1170만달러로, 부부는 200만달러에서 2340만달러로 11.7배 늘었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노인 세대에서 자녀 세대로의 부의 이전이 가속화하는 추세다. 지난해 과세당국에 신고된 증여재산가액은 43조6134억원으로 10년 전인 2010년(9조8017억원)에 비해 345% 증가했다. 같은 기간 상속재산가액은 8조7097억원에서 27조4139억원으로 215% 늘어났다.
한국은 상속·증여세 부담이 세계에서 손꼽힐 정도로 무겁기 때문에 미국만큼의 기록적인 세대 간 자산 이전은 이뤄지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현재 한국에서 성인 자녀에 대한 증여세 면제 한도는 2014년 이후 줄곧 5000만원으로 미국에 비해 턱없이 적다. 증여세 과세표준이 30억원을 넘으면 50%의 증여세율이 적용된다.
워싱턴=주용석 특파원/정의진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