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금기를 깬 천재 감독과 배우…30여년 만에 관객과 만난다

입력 2021-07-04 17:41
수정 2021-07-05 00:32
사회의 모든 금기가 깨지고, 복수심과 욕망이 한데 뒤섞여 펄떡인다. 한국 영화사의 한 획을 그은 김기영 감독(1919~1998)의 미개봉 유작 ‘죽어도 좋은 경험’(사진)은 1990년에 제작된 영화지만 이 시대의 관객들에게도 ‘파격 그 자체’로 다가온다. 올해 오스카의 주역인 배우 윤여정이 주연을 맡아 강렬한 카리스마와 서늘한 광기를 보여준다.

김 감독은 ‘하녀’ ‘화녀’ ‘충녀’ 등을 남긴 한국 리얼리즘 영화의 대가다. ‘하녀’는 영화 ‘기생충’의 모티브가 된 작품으로 알려지면서 다시 주목받았다. 김 감독과 윤여정의 인연도 다시금 회자됐다. 무명의 신인 배우 윤여정을 발탁한 김 감독은 ‘화녀’ ‘충녀’ ‘죽어도 좋은 경험’을 함께 작업했다. 윤여정이 올해 오스카 시상식에서 “김기영 감독님께 감사하다. 아직 살아계신다면 나의 수상을 기뻐했을 것”이라고 말했던 이유다.

‘죽어도 좋은 경험’은 남편의 실수로 아이를 잃은 여정(윤여정 분)이 우연히 만난 명자(이탐미 분)가 남편의 외도로 억울하게 이혼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시작된다. 두 사람은 서로를 도우며 친분을 쌓게 되고, 급기야 범죄도 공모한다. 여정은 명자 남편의 외도 상대를, 명자는 여정의 남편을 살해하기로 한다.

이 영화는 김 감독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서도 파격적이고 수위가 높은 편이다. 외도, 폭행, 살인 등 사회적 금기가 모두 소재로 활용됐다. 이는 단순히 자극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당시 사회상과 인간의 숨겨진 내면을 들춰내는 역할을 한다.

김 감독답게 다양한 미장센과 은유법도 발견할 수 있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올림픽대교를 반복해 보여준다. 김 감독은 이를 통해 그 시대의 서울 풍경과 소리를 생생하게 담아냈다. 주연 배우들의 더빙으로 완성된 ‘유성 영화’인 점도 눈여겨봐야 한다. 영상에 배우들이 목소리를 입힌 것으로, 레트로 감성을 한껏 자극한다.

30여 년 전 작품이지만 여성 중심 서사도 돋보인다. 부제가 ‘천사여 악녀가 되라’인 만큼 욕망과 광기가 서린 강렬한 여성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40대 초반인 윤여정의 모습도 인상적이다. 그는 자신과 동일한 이름의 캐릭터를 통해 외도와 살인 장면을 과감하게 연기한다. 그러면서도 우아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으로 관객을 압도한다.

이 작품은 국내 영화 최초로 ‘대체 불가능한 토큰(NFT)’으로도 판매될 예정이다. 영화 소유권 일부를 NFT로 분할 판매하는 식이다. 구매자는 추후 영화 수익을 받을 수 있다. 극장 개봉은 7월 15일.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