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최재형, 文 정권이 만든 '순교자' 벽 넘을 수 있을까 [홍영식의 정치판]

입력 2021-07-04 13:45

야권 대선판이 본격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6월 29일 출마를 공식 선언했고 하루 전엔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사표를 던지고 문재인 정부에서 하차했다. 두 사람 모두 지난 1년 가까이 출마 연기만 피우다가 이제는 현 정권과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면서 명실상부한 야권 대선 주자로 이름을 올리게 됐다.

윤 전 총장의 출마 선언 내용은 정통 보수에 가깝다. “민주주의는 자유를 지키기 위한 것이고 자유는 정부의 권력 한계를 그어 주는 것”, “자유가 빠진 민주주의는 진짜 민주주의가 아니고 독재요 전제다”, “무너진 자유민주주의와 법치, 시대와 세대를 관통하는 공정의 가치를 기필코 다시 세우겠다” 등의 발언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현 정부에 대한 비판은 강도가 셌다. 권력 사유화, 국민 약탈, 부패 무능 세력 등 직설적 단어로 공격했다. “한·일 관계는 죽창가를 부르다 망가졌다”, “정권 교체 실패하면 부패 완판 대한민국이 될 것” 등 표현도 있다. 현 정부와 정면으로 맞서는 야권 주자임을 공식 천명한 것이다.

최 전 원장은 6월 28일 사퇴하며 출마를 공식화하지는 않았다. 최 전 원장이 정치 입문 시기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오늘 사의를 표명하는 마당에 말씀드리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감사원장직을 내려놓고 대한민국의 앞날을 위해 제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숙고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고 답했다. 자칫 감사원장이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대선 출마 선언은 시차를 두겠다는 것이다.

아직 대선 출마 준비도 돼 있지 않고 비전도 가다듬지 않은 상황에서 출마의 뜻을 밝히는 것은 섣부를 수 있다는 판단도 했다. 최 전 원장을 돕는 한 정치권 인사는 “이제 출발”이라며 “정치적 기반을 다져야 하고 어떤 나라를 만들 것인지에 대한 비전과 각 분야 정책 구상도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그런 준비가 어느 정도 된 다음 대선 레이스에 늦지 않게 뛰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文정부 공직 기관장이 野 유력 주자 된 것은 아이러니

윤 전 총장과 최 전 원장 모두 문재인 정권에서 발탁됐다가 야권 유력 대선 주자가 된 것은 아이러니다. 두 사람은 문재인 정권을 만든 ‘공신’은 아니다. 하지만 발탁 당시 모두 여권의 두터운 신임을 받은 공통점이 있다. 여권은 윤 전 총장에 대해 ‘정의로운 검사의 아이콘’으로 치켜세웠다. 최 전 원장에 대해선 “헌법상 부여된 회계 검사와 직무 감찰을 엄정히 수행해 감사의 독립성·투명성·공정성을 강화하고… 바른 공직사회, 신뢰받는 정부를 실현해 나갈 적임자(2017년 12월 발탁 당시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라고 호평했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결과적으로 배신자 취급을 받았다. 윤 전 총장은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3년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 사건’ 특별수사팀장을 맡았다. 현 정부에서 그를 서울지검장에 이어 검찰총장으로 발탁한 것은 이런 이력과 ‘강단’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이 정부에서도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지론대로 조국·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뿐만 아니라 문재인 대통령과 각을 세워 여권의 ‘공적 1호’가 됐다.

문재인 정권과 최 전 원장이 갈라진 결정적 계기는 월성 1호기 조기 폐쇄에 대한 감사였다. 월성 1호기는 경제성 평가에서 계속 가동해야 한다는 결과가 나왔는데도 2018년 6월 소집된 한국수력원자력 이사회에서 폐로 결정이 내려졌고 야당은 감사원에 감사를 청구했다. 여당 의원들은 탈원전은 대선 공약이라는 이유로 감사의 부당성을 주장하며 최 전 원장을 압박했다. 이에 최 전 원장은 “대통령 공약이라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맞받아 쳤다.

‘586’ 운동권 핵심이자 대통령 복심으로 꼽혀 온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집을 잘 지키라고 했더니 아예 안방을 차지하려 든다”고 비판했고 여당 의원들은 “월성 1호기 폐쇄 정책을 감사, 수사한다는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정면 도전”, “대통령의 통치 행위에 정면으로 맞서겠다는 것”등의 거친 공격을 퍼부었다. 최 전 원장 측의 한 인사는 “특히 임 전 실장의 ‘안방’ 발언은 최 전 원장이 대선 쪽으로 마음을 바꾼 결정적 계기가 됐다”고 했다.

두 사람은 만만치 않은 과제를 안게 됐다. 이젠 안개를 걷어내고 도덕성뿐만 아니라 정책적 측면에서 실력을 보여줘야 한다. 정치 평론가인 서성교 건국대 초빙교수는 윤 전 총장의 강점으로 △문재인 정권과 싸운 저항의 핵심 축이자 향후 반문재인 진영의 선두 주자로 부상한 점 △정권 핵심에 굴하지 않고 싸운 투쟁력과 전투력 △공정과 상식의 실현 기대감 △원칙적이고 투명한 국정 운영에 대한 기대감 △리더십과 조직 관리 능력 등을 꼽았다.

하지만 약점도 뚜렷하다. 저항 이미지는 긍정 요인도 될 수 있지만 발목이 될 수도 있다. 저항·반항·항거 이미지를 넘어 최고 국정 운영자로서 변신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도 있다. 평생 검사로 살아온 그가 경제·외교·안보·교육 등 분야별 국정에 대한 콘텐츠를 갖췄는지도 여전히 의문이다. 출마 선언 때 이 부분에 대해 충분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판검사로 살아온 사람이 국정 제대로 할까”…답 내놔야

토론이 활성화된 시대에 대선 후보라도 큰 틀의 구호와 청사진만 갖고는 넘어가기 어렵다. 장모와 부인을 둘러싼 검증 문제는 최대 난관이다. 도덕성 검증은 사실 여부를 떠나 제기되는 자체만으로도 이미지에 큰 타격을 주고 대선판을 흔들 수 있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현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아들 병역 문제를 둘러싼 이른바 ‘김대업 병풍(兵風)’ 사건은 나중에 진실이 가려졌지만 이미 대선 버스는 지나간 다음이었다.

최 전 원장은 대선에서 필수적인 ‘스토리’를 갖췄다. 경기고 재학 시절 소아마비를 앓는 친구를 2년간 업고 다녔고 사법고시도 함께 합격한 일화와 자녀 넷 중 두 명을 입양해 키운 것, 아마존 오지를 찾아 의료 봉사와 선교 활동을 한 사실 등은 국민 감성을 파고들 수 있는 매력적인 스토리다. 월성 1호기 감사 과정에서 정권 핵심부와 맞서는 뚝심과 강단, “외부의 압력에 순치(馴致 : 길들이기)된 감사원은 맛을 잃은 소금과 같다”는 등의 소신 발언은 대선 주자로서 매력을 더하는 요인이다.

6·25 전쟁 영웅인 아버지를 뒀고 최 전 원장 자신을 포함해 형제들이 모두 장교로 복무해 안보관도 검증 받았다. 하지만 평생 판사를 지낸 만큼 각 분야 정책 콘텐츠를 얼마나 갖췄는지, 정치 리더십을 제대로 발휘할지 등 의문에 대한 답을 얼마나 충분히 내놓을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윤 전 총장과 최 전 원장은 이렇게 공통점이 많다. 그런 두 사람은 상호 보완재라기보다 대체재에 가깝다. 국민의힘에선 한 사람이 낙마하는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두 사람 모두 입당해 경쟁시켜야 한다는 것을 공공연히 얘기한다. 경선에서 붙으면 그만큼 불꽃이 튈 수밖에 없다.

정권에 정면으로 맞서는 두 사람의 강골과 강단이 대선 주자로 우뚝 서게 한 원동력이라는 사실은 새삼 거론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대선판에 본격 오른 만큼 이젠 ‘바람’과 문재인 정부에 의한 순교자·항거 이미지에만 의존할 상황이 못 된다. 대선은 다른 선거에 비해 과거를 잣대로 한 ‘회고적 투표’보다 미래를 기준으로 한 ‘전망적 투표’ 성격이 훨씬 강하다. 이 때문에 국민은 이제 두 사람이 과연 나라를 맡길 만한 재목과 그릇이 되는지 이모저모 따져볼 것이다. 이제부터 진짜 시험대에 오른다는 의미다.

홍영식 논설위원 겸 한경비즈니스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