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넷째 주에 전력예비율이 4.2%까지 떨어질 수 있다는 정부 공식 전망은 탈(脫)원전의 끝모를 폐해를 재확인시켜 준다. 전력예비율 4.2%는 안정권인 10%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예비전력이 7월 말께 4.0GW까지 떨어질 수 있다는 게 정부 분석이다. 2011년 ‘9·15 대정전’ 때(3.43GW)보다 겨우 0.57GW 높은 수치다. 탈원전을 밀어붙이느라 의도적으로 전력수요를 낮춰 잡는 바람에 수요예측에 실패했다는 지적이 공공연하다.
정부는 ‘여름철 전력수급 전망과 대책’을 확정하고 총력 대응을 선언했다. 하지만 유례없는 폭염 예보와 경기회복에 따른 전력수요 증가세를 고려할 때 2013년 이후 8년 만의 경보 발령 우려가 증폭되고 있다. 실제로 지난 달 전력판매량 증가율은 전년 대비 6.6%에 달했고, 산업용만 보면 10.3%까지 치솟았다.
전력수요가 급증하면 발전기 고장 같은 돌발변수가 발생해 치명적인 사태로 이어질 위험이 커진다. 태양광 발전 용량이 급증하는 등 변동성이 큰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아진 점도 변수다. 그래도 정부의 탈원전 기조는 요지부동이다. 작년 4월 준공된 원전 신한울 1호기는 비행기 충돌 위험 등 납득하기 힘든 이유로 가동이 불허되고 있다. ‘정비’를 이유로 한빛 4호기와 한빛 5호기도 각각 4년·1년 넘게 가동중단 중이다.
대신 정부는 시운전 중인 석탄발전기 고성하이 2호기와 LNG발전기 부산복합 4호기의 조기 투입을 결정했다. ‘2050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는 정부가 석탄발전을 선택했다니, 이런 자기모순이 또 있을까. 지난 겨울 북극한파 대응차원에서 석탄발전기를 풀가동하고 최대출력 상한 제약을 풀자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렸다. 그 여파인지 최근 한반도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역대 최악으로 분석됐다. 탈원전이 경제적 피해를 넘어 국민건강까지 위협하는 지경인 셈이다.
전력위기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중국은 폭염으로 10년 만에 최악의 전력난을 겪고 있다. 대만이나 초강대국 미국도 비슷하다. 어딘가에서 사태가 악화돼 글로벌 공급망에 균열이 오는 비상상황도 상정해야 한다. 그래도 정부는 ‘설마’ 하며 여름휴가 분산을 기업에 호소하는 미봉책을 되풀이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