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50개의 철학 개념이 지적 전투력을 키운다

입력 2021-07-05 09:01
수정 2021-07-06 00:04

철학은 ‘인간과 세계에 대한 근본 원리와 삶의 본질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자신의 경험에서 얻은 인생관, 세계관, 신조’도 철학이라고 부른다. 철학이 중요한 건 알지만 어쩐지 딱딱하고 어렵다는 생각이 드는 게 사실이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소크라테스로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따분하고 머리 아프다. 다행히 이 책은 시간순이 아니라 50가지 철학자의 개념을 ‘사람, 조직, 사회, 사고’로 분류해 흥미를 끈다.

요즘 글로벌 기업 간부들은 일부러 시간과 돈을 들여 철학 공부를 한다. 서울대 최고지도자 인문학과정은 들어가기도 힘들다. 이미 사회에서 자리 잡은 전문가들이 왜 철학을 공부하려는 걸까.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의 저자 야마구치 슈는 ‘교양이 없는 전문가보다 위험한 존재는 없기 때문’에 철학 공부를 하는 거라고 말한다. 세계 1위 경영·인사 컨설팅 기업 콘페리헤이그룹의 시니어파트너인 저자는 현장에서 일이 막힐 때 철학 개념으로 돌파한 경험이 많다고 한다. 간단한 일이 외국인에게 통하지 않을 때 베이컨의 동굴의 우상, 즉 독선을 떠올려 해법을 찾는 식이다. 재미있는 지식이 가득하다이 책에는 50명의 철학자가 등장한다. 한 명에게 대여섯 페이지를 할애해 중심 개념을 설명하고, 철학이 현실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어떤 도움을 주는지, 어떻게 활용해 사고방식과 행동에 변화를 줄 수 있는지 기술했다. 요즘 자주 오르내리는 르상티망(니체), 페르소나(융)부터 시작해 누구나 잘 안다고 생각하는 카리스마(막스 베버), 앙가주망(사르트르), 아노미(뒤르켐)까지 광범위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종합베스트셀러 1위에 오를 정도로 인기를 끈 이 책은 재미있는 데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뭔가 배운다는 느낌을 확 안겨준다. 그간 여기저기서 들었던 개념들이 총망라돼 있으면서 그 개념들로 인해 다양한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게 강점이다.

몇 가지만 소개한다면, 손잡이를 누르면 반드시 먹이가 나오는 것(고정비율 스케줄)과 손잡이를 누르면 불확실하게 먹이가 나오는 것(변동비율 스케줄) 중에 어떤 것이 더 동기부여가 클까. 답은 변동비율 스케줄이다. 도박에 빠져드는 심리, 예측이 불가능한 SNS에 빠져드는 심리는 불확실한 것에 매력을 느끼는 인간의 본성과 닿아 있다는 게 스키너의 철학 ‘대가’ 개념이다.

기장이 조종할 때와 부기장이 조종할 때, 추락사고가 언제 더 많이 날까. 유능한 기장이 사고를 덜 낼 것 같지만 그 반대다. 부기장은 기장의 행동이나 판단에 반대 의견을 솔직하게 말하기 어렵지만 부기장이 조종타를 잡으면 상사인 기장이 자연스럽게 이의를 제기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게 호프스테더의 ‘권력 거리’ 개념이다.

철학자들의 개념을 이해하면 단순하게 대했던 세상을 주관을 갖고 정확하게 바라보는 가운데 판단에 신중하게 된다. 요즘 가스라이팅 관련 피해자와 세뇌당해서 이상한 집단에 빠져드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철학을 공부하면서 다각도로 생각하게 된다면 사악한 유혹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선택에 앞서 다양한 철학 개념을 대입하면 현명한 판단과 가까워지지 않을까. 나의 철학을 확고히 세우자저자는 철학의 힘을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을 깊이 있게 통찰하고 해석하는 데 필요한 열쇠를 얻게 해준다’고 주장한다. 철학적 사고법의 네 가지 핵심 요소로 △예리하게 상황을 파악하는 통찰력 △변화를 위한 비판적 사고 △정확한 아젠다 설정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는 교훈으로 꼽았다. 철학적 사고법을 익힌다면 실수를 최대한 줄일 수 있다는 의미다.

저자는 50개의 철학 개념을 접하면 지적 전투력이 극대화될 거라고 강조한다. 소외, 자연도태, 증여, 격차, 공정, 우상, 몰입 같은 개념의 정확한 뜻을 접하면 사고의 폭이 넓어질 게 분명하다. ‘한 권에 50명의 철학자라니 수박 겉핥기 아냐’라는 생각이 든다면 마음에 닿는 개념을 따로 공부하면 될 것이다.

철학자들의 개념을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저자는 무신론자인 니체가 성경까지 르상티망에 대입해 분석하는 건 수긍하기 힘들다고 밝혔다. 철학자들의 개념을 숙고하는 과정에서 나의 철학을 확고히 세우는 것이 이 책을 제대로 읽는 방법일 것이다. 바로 활용할 수 있는 지식이 가득한 데다 사고의 깊이를 더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