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승계를 ‘부의 대물림’으로 보는 시대착오적인 논쟁이 제도 개선이 더딘 근본 원인입니다. 독일 일본 등은 일자리 창출과 국가 경쟁력을 위해 가업상속 제도를 대폭 손질했는데 우리만 철 지난 이념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조병선 중견기업연구원장)
30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기업승계 제도개선을 위한 토론회’에선 기업승계를 준비 중인 창업주와 이미 승계 작업을 진행한 기업 2세들의 성토가 쏟아졌다. 이들은 “기업승계 조건이 너무 까다로워 승계는커녕 세금 마련에만 고심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기업승계도 제2의 창업, 지원 늘려야”욕실용 자재를 제조하는 와토스코리아의 송공석 대표(69)는 “대규모 투자로 절수형 양변기, 비데 등 욕실 제품으로 사업을 확장하려다 상속공제 문제로 뜻을 접었다”고 밝혔다. 신사업에 쓰이는 부속품의 분류코드(중분류 기준)가 양변기(23), 수도꼭지(25), 비데(28) 등 달라 상속공제 사후관리 요건(업종 유지)을 지키지 못하게 됐기 때문이다.
송 대표는 “원래 만들던 욕실용 플라스틱 제품의 중분류 코드가 22여서 신제품은 모두 코드가 다르다”며 “기업을 승계할 자녀를 생각하면 세금이 너무 커서 신규 투자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소방 기업인 한방유비스의 최두찬 대표는 지난해 지분을 받고 승계 작업을 하면서 증여세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다고 말했다.
그는 “기업승계 주식에 대한 증여세 과세 특례를 적용받아 일반 증여보다 낮은 세율(10~20%)이 적용됐는데, 일부 자산이 ‘비사업용’으로 분류되면서 이 같은 자산에 대해 ‘일반 증여세율’이 산정됐고 내야 하는 세금이 훌쩍 늘어났다”고 했다. 일반 증여는 과세표준에 따라 10~50% 누진 과세가 적용된다는 이유에서다.
최 대표는 “중국과 베트남 법인 사무실을 위한 투자금을 사업용 자산으로 인정받지 못했다”며 “올해 돌아오는 세금은 어떻게 낼지 고민”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세금 납부 방법을 찾으려 기업승계를 전문 컨설팅하는 업체에 문의해야 했다”고 하소연했다.
섬유원단 제조 A사의 전직 대표는2013년 부친의 지분을 상속받아 회사를 운영하다가 사후 요건(고용 유지)을 지키기 어려워져 결국 가업상속을 포기했다며 울먹였다. 그는 “상속받을 당시 고용을 10년간 유지해야 할 상황이었는데 제조업의 인력 구하기는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다”며 “창업은 정부 혜택이 많은데 기존의 기업승계에는 인색하다”고 말했다. “최대주주 할증 가산은 징벌적 조세”토론회에 참석한 학계 등 전문가들도 가업상속공제 제도 개편에 공감했다. 조병선 원장은 기업승계에 따른 증여·상속을 일반 재산의 상속과 같게 보는 시각을 문제로 지적했다. 그는 “기업승계 관련 상속세율을 조정해 일반 상속보다 낮게 적용해 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최대주주 주식에 할증해 상속세를 가산하는 현행 제도에 대해서도 “대주주에 대한 징벌적 조세로, 해외에 선례가 없다”며 폐지를 주문했다.
정욱조 중기중앙회 혁신성장본부장도 최대주주 지분 요건 등을 낮춰 기업승계 지원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는 점에 공감했다. 정 본부장은 “50년 이상 장수기업들이 일반 기업보다 매출, 영업이익, 부가가치 등의 측면에서 월등히 높다”며 “기업승계가 원활하지 못하면 손해는 고스란히 우리 사회의 몫”이라고 지적했다.
이영한 서울시립대 교수는 “같은 규모의 기업과 수익용 자산을 받는 후계 경영인 시뮬레이션을 해보면 수익용 자산을 받는 게 후계자에게 더 이득”이라며 “고용 창출과 법인세를 납부하는 기업이 승계를 받을 수 있게 국가가 지원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김희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세법 개정에 앞서 상속세를 납부하기 위해 상속 자산을 담보로 쓸 수 있도록 해야 기업인의 고민이 줄어들 것”이라며 “정책금융기관이 상속재산을 담보로 장기 저금리 경영안정자금을 지원하는 방안도 고려해볼 만하다”고 밝혔다. 조경원 중소벤처기업부 정책총괄과장은 “중기중앙회의 기업승계 지원센터 기능을 확대하고 기획재정부와 논의해 현장의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하겠다”고 했다. 조병선 중견기업연구원장은 “유럽에선 기업 승계 지원이 창업 지원보다 더 많은 일자리 창출 효과를 낳는 다는 점에서 정부가 창업에 준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동현 기자 3co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