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객기 사들이는 美 항공사…보복여행에 '베팅'

입력 2021-06-30 17:41
수정 2021-07-01 01:48
델타 변이가 확산하고 있지만 항공사를 비롯한 미국 기업들은 코로나19 이후를 대비하고 있다. 비행기, 자동차 등을 통한 이동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고 과감한 투자를 통해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전략이다.


미 유나이티드항공은 보잉과 에어버스로부터 항공기 270대를 구매하기로 계약했다고 29일(현지시간) 발표했다. 보잉의 737맥스 200대와 에어버스의 ‘SE A321네오’ 70대로 정가 기준으로는 300억달러(약 33조8000억원)에 달한다. 유나이티드항공 창사 이래 가장 큰 규모의 구매 계약이다. 미 항공업계로는 2011년 이후 10년 만에 최대 규모다.

기존 주문과 이번 계약을 통틀어 유나이티드항공은 새 항공기 500대가량을 확보하게 된다. 보유 중인 구형 항공기 300대를 대체하고 200대를 추가해 연간 운항을 4~6%가량 늘릴 수 있게 된다. 미 국내선 편당 좌석을 30% 확충하는 한편 퍼스트클래스 등 고가 좌석을 75% 이상 추가하기로 했다. 또 모든 항공기 좌석에 스크린을 설치해 비행 중 영화 등을 감상하려는 고객 수요에 대응하기로 했다.

현재 유나이티드항공의 재무상황을 감안하면 이번 대규모 구매 계약이 다소 무리한 결정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유나이티드항공의 장기(만기 1년 이상) 부채는 330억달러에 이른다. 코로나19 여파로 지난해 70억달러의 손실을 봤다. 회사 측은 다음달부터 순익을 낼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국내선보다 수익성이 좋은 국제선 운항은 여전히 완전 재개되지 못하고 있다. 프리미엄 좌석 수요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기업 등의 출장도 아직 본격적으로 늘어나지 않고 있다. 미 항공업계에선 유나이티드항공이 이번 계약으로 재무적 부담을 피하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많다.

하지만 유나이티드항공은 조만간 항공 수요가 빠르게 회복될 것이라는 전망에 ‘베팅’하는 길을 택했다. 미리 대비하지 않으면 경쟁사들에 고객을 빼앗길 수 있다는 우려도 반영됐다. 유나이티드항공은 2026년까지 2만5000명을 신규 채용해 현재보다 직원 수를 37%가량 늘리겠다고 밝혔다.

다른 미 항공사들도 항공기 확보에 나섰다. 사우스웨스트항공은 지난 3월 보잉에 항공기 100대를 주문한 데 이어 지난 8일에는 34대를 추가 구매했다고 발표했다. 델타항공도 4월 에어버스에 항공기 25대를 추가 주문했다고 공개했다. 코로나19 사태 전 항공기를 대량 주문해둔 아메리칸항공을 제외한 미 4대 항공사가 올 들어 모두 공격적으로 항공기 확보에 뛰어든 것이다.

수요가 늘고 있는 렌터카 업계에서도 대응에 나섰다. 미 렌터카 업체 허츠는 최근 자산유동화증권(ABS) 발행을 통해 22억달러를 조달하고 이를 차량 확보에 사용하기로 했다. 업계에선 지난해 코로나19 사태로 파산보호 신청을 할 만큼 위기에 몰렸던 허츠가 렌터카 수요 급증으로 회생 기회를 잡았다고 보고 있다.

수요 회복이 개인들에게 ‘불똥’이 튀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국 신차 시장이 공급자 우위로 재편됐다. 자동차 딜러들은 신차를 사러 온 고객들에게 제조사의 권장 소비자 가격보다 수천달러에서 수만달러 이상까지 웃돈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옵션 끼워팔기도 자주 일어나고 있다. WSJ는 “자동차 실구매 가격 상승이 인플레이션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했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