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정부 때부터 계속된 미국과 중국의 경제 전쟁은 조 바이든 정부가 출범한 뒤에도 계속되고 있다. 반도체를 필두로 한 대립과 갈등은 기술 전쟁, 기업 전쟁, 산업 전쟁으로 한층 격화되고 있다. 현상적으로는 미국과 중국 간의 공급망 경쟁 정도로 보이기도 하지만 상황은 중차대하고 복합적이다. 중국을 에워싸고 옥죄는 미국 압박은 글로벌 동맹 구축으로 확대가 현저하다. 거대한 메가트렌드 같은 이 전쟁이 한국에는 심각한 위기일까, 한번 도전해볼 만한 기회도 될까.
이 문제를 놓고 지난주 동아시아재단 등이 개최한 제주포럼에서 의미 있는 한-중-일 전문가 토론회가 열렸다. 올해 16회째인 사흘 간 제주 국제포럼의 한 세션이었다. 주제는 ‘미-중 공급망 경쟁과 동아시아의 선택- 기회와 도전’이었다. 류상영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가 좌장을 맡았고, 중국에서는 최근 들어 묵직한 목소리로 각광을 받고 있는 타이헤연구소의 딩이판 선임연구위원이 나와 거침없는 언변으로 중국 측 입장을 명확하게 전했다. 미국 쪽에서는 제임스 김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 회장이 나서 미국 기업계 입장을 중심으로 이 문제에 대한 시각을 피력했다. 안준성 메릴랜드 변호사는 테슬라라는 구체적 사례를 들면서 상품의 국제이동에 따른 다양한 쟁점들을 정리했다.
◆격화된 미-중 대립 전선…정부 갈등에 기업까지 끼어들게 돼 기자도 지난해에 이어 이들과 나란히 토론자로 참석했다.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결합한 이번 토론회의 관전평을 소개한다. 90분 토론회를 그대로 전할 수 없어 몇몇 포인트만 압축해 본다.
이 포럼이 더 주목되는 것은 2020년 11월 제15회 제주포럼 때 열렸던 비슷한 주제, 같은 형식의 토론 세션의 연장선상에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기자는 한국 입장에서 갈수록 첨예해지는 미-중 간의 산업·경제 전쟁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해 4 가지로 요약 발표했다. 한국 기업, 산업계의 시각을 좀 더 비중 있게 반영했다고 할 수 있다.
첫째 트럼프 행정부 시기인 2020년까지는 전선이 좁았다. 말하자면 ‘화웨이 갈등’ 수준이었다. 화웨이 IT부품에 정보누출 가능성이 있는지 없는지, 화웨이 통신부품을 쓸 수 있는가 아닌가, 그런 차원이었다. 지금은 대립 전선이 훨씬 넓어졌다. 공급망 혹은 가치사슬 차원에서 보면, 반도체를 필두고 배터리, 희토류, 백신까지 확대됐다. 반도체의 경우, 바이든 정부의 빅 픽쳐에서 파생적인 문제가 나오고 있다. 바이든 정부의 움직임과 한국 기업의 400억 달러 미국 투자를 유의해서 봐야 한다. 희토류 이슈에서는 반대로 중국이 대항적 수단으로 활용하는, 일종의 주도권을 쥔 듯한 모습으로 갈등 구조가 많이 다르다. 네 가지 모두 미래 IT 성장 발전에 있어 중요한 산업 요소인데, 윈-윈으로 가는 게 아니라 서로 '손해 불사'로 치닫는 게 문제다.
둘째 그간의 미-중 갈등은 정부 간 대립의 양상을 보여 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좋든 싫든 기업이 이 전쟁에 깊숙이, 전면적으로 끼어들게 되었다. 기업이 포함되면서 복합방정식, 복차함수가 돼버렸다.
셋째 중국의 입장 변화다. 중국은 그동안 수세적 입장을 취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미국을 향해 WTO 정신을 이행하라고 요구하며 비관세 교역 장벽을 낮추고 가자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중국도 상당히 공세적이다. 미국에 대항하는 블록을 형성하자고도 한다. 이 또한 대립을 격화시키는 원인이자 결과가 됐다.
넷째 이로 인해 한국은 한층 어려운 상황이 됐다. 이전에는 안보는 미국과, 경제는 중국이라는 ‘안미경중’ 또는 ‘전략적 모호성’ 같은 입장도 취했지만, 이제 그것이 어렵게 됐다. 경제가 곧 안보, 안보가 곧 안보가 된 상황이다. ◆중국 목소리도 더 커져…"서방 국가에 원인 있다"고 주장오간 토론을 종합해보면 중국과 미국·한국의 입장차가 명확했다. 좁게는 반도체 등 공급망 문제, 넓게 보면 산업과 금융·경제 전반에 걸쳐 전쟁이 벌어지는 것에 대해 중국은 ‘서방 국가’에 원인이 있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서방 국가는 곧 미국 얘기다. 해법에서도 서방 국가들이 풀어야 한다는 시각이었다. 중국은 공급망의 구축 내지는 정상화에서도 ‘동아시아’에 역점을 뒀다. 하지만 공급망이든 산업의 가치 사슬이든 글로벌 관점에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런 전제로 다국적 기업들이 움직이고 있다. 중국과 중국 밖의 이런 시각차는 현재의 이 대립이 쉽게 풀리기 어려운 문제임을 다시 한 번 확인 시켜준다. 그 때문에 갈등과 대립의 전선이 커지면서 복합적 난제가 되기도 했을 것이다. ◆류상영 교수 對中 4가지 질의
"희토류 보복 수단 아니지만, 수출 제한은 가능" 이번 국제 토론에서는 중국의 향후 대응과 행보에 관심이 많이 쏠렸다. 세션 좌장 류 교수가 토론자들 발표 등을 감안하면서 미리 준비해온 4개 질의를 중국 측에 던졌는데, 모두 시사점이 큰 아젠다다. 류 교수는 첫째, 중국이 역점을 두고 추진 중인 ‘Made in China 2025’ 전략이 성공할 것인지, 어느 정도(몇 %?) 성공할 것으로 전망하는 지를 물었다. 둘째, 희토류 문제와 관련해 (국가적 무기화 가능성에 대해) 중국 주변국들 우려 깊은 현실을 지적하면서 희토류를 무역 보복의 수단으로 삼을 것인지 였다. 셋째, 미국과 어느 지점에서 중국이 협력해야 할 것인가. 넷째, 시진핑 주석이 CPTTP가입과 관련해 언급했는데,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 였다.
이에 대해 딩 선임위원은 거침없는 달변으로 자세한 답변을 했다. 답변이 좀 길었지만, 중국의 대외정책과 향후 행보를 짐작하는 데 도움이 될 듯해서 최대한 그대로 전한다.
“Made in china 2025는 10년 개발 프로그램으로 과학기술 발전 10년마다 업데이트 될 것이다. 지금까지 원활하게 추진하고 있다. 그간 많은 진전을 이루었고 특히 기술적인 측면에서 중국은 급격히 발전하고 있다. 초고속 통신 등에 많은 발전 이루고 있다. 시간당 600 킬로미터를 가는 철도를 개발하고 있다. 차세대 철로 개발을 통해 철로 위에서 달리지 않고 자기장 위에서 달리는 것을 개발하고 있다. made in China 2025 계획은 성공적으로 이행되고 진전하고 있다. 새로운 기술 융합도 구현하고 있다. 융합 기술 에너지 기술 개발의 경우 최근에 중국 과학기술대학에서 진전이 있었다. 2025년 이전에 다 달성하기엔 힘들 수 있지만, 2035년 전에는 이러한 기술 및 핵융합 기술의 상용화가 가능할 것으로 생각한다. 핵융합 기술을 발전시켜서 기존 방식과 전혀 다르게 에너지 사용 효율화를 이룰 것이다.
중국은 희토류를 보복 수단으로 사용할 의도가 없다. 희토류를 압박하는 무기로 사용해서 돈 벌 의도는 없다. 희토류는 현대 생산에 중요하고 필수 자원이다. 미국도 희토류의 중요성 알고 있다. 중국은 미국이나 한국에 대해 위협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중국이 희토류 수출에 제한을 가할 수는 있다. 왜냐 하면 희토류를 중국의 이익에 따라서 수출을 제한할 수 있는 상황 생길 수 있다. 희토류 가격 인상 혹은 가격 하락에 중국 국익을 먼저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중국은 전 세계적으로 희토류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다. 중국의 희토류 자원 추출 비율은 전 세계 평균보다 더 높다. 시장 상황을 살펴보면 미국이나 호주의 경우 중국 외 희토류를 사용하기로 하면서 중국을 견제하고 있다. 희토류 추출에 있어 중국은 최고 수준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중국과 미국의 경제적 협력은 2008 금융위기 이후 많은 논의가 있었다. 미국인들은 역사적으로 배운 경험들을 잊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싶다. 금융 분야 협력이 매우 중요한데, 미국이 2008년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중국과 협력했다. 가까운 미래에 미국이 인플레이션 상승 압박이 높아지면 중국에게 돌아오지 않을까 싶다. 미국이 다음에 위기가 있으면 그때 다시 중국과 협력할 것이다.
CPTTP에 대해서 중국은 굉장히 진지하다. 투자 협력 합의에 있어서 시진핑은 RCEP에서 협상을 하고 있다. 중국은 이러한 합의로 혜택을 보고 있다. 어떤 측면에서 중국은 역내 자유무역을 원한다. 한국 일본과 FTA를 추진하기를 원한다. 일본과 합의는 이미 실패했지만…. 우리는 이런 FTA를 아시아 국가들과 하고 싶어 하고, 역내 협력을 강화하고 싶어 한다. 국제 무역이 더 자유로워지면 더 큰 기회를 갖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제조품을 파는 것만이 아니고 더 큰 기회를 노리고 싶고, 자유무역을 통해 글로벌 공급망을 구축하고 싶다.” ◆위기의 WTO체제…한국엔 위기인가, 기회도 될까·한국 GM 대표를 지낸 제임스 김 회장 등도 의미 있는 견해를 밝혔지만, 그 내용을 모두 전하기는 어렵다.
반도체, 배터리와 전기차 등에서 유리한 공급망을 건설하려는 미국의 공세적 행보와 중국의 적극적 대응이 본격화되면서 여러 정책이 나타나고 있다. 기술경쟁이 외교, 정치, 통상, 안보에서의 경쟁, 갈등과 대립으로 비화되고 있다.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는 이 전쟁의 최대 격전지다. 한국의 다국적 기업과 핵심 기간산업은 이 대립의 최전선으로 내몰리고 있다. 이 경쟁이 어디까지 가고 전쟁은 어떤 양상이 될지 예측 불허다. 한국 기업들은 이런 국제환경 변화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극히 어려운 시기에 한국과 한국 기업들이 노출돼 있다.
자유 무역, 공정 교역, 제한 없는 투자 확대 등으로 국경선을 낮춰온 것은 분명 전체 인류에 풍요와 평화를 선사해 왔다. 그런데 그 성과가 흔들린다. WTO체제의 최대 수혜국은 중국이라고 볼 만 하지만, 한국은 물론 한때 인플레 없는 성장도 구가한 미국 역시 그 덕을 단단히 누려왔다. 이 틀을 깰 수 있는 변화의 바람이 거세어진다. 그러면 신 블럭화, 신질서가 조기에 짜일까. 한국에는 위기인가 기회인가.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