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멀어져가는 동북아 금융허브의 꿈

입력 2021-06-30 17:22
수정 2021-07-01 00:17
금융 중심지라는 단어가 언론에서 다시 거론되기 시작한 건 지난해 하반기였다. 홍콩보안법 등으로 홍콩 시장이 흔들리며 홍콩을 떠나는 기업과 금융회사들이 생겨났다. 한국 금융가에선 내심 서울이 ‘헥시트(Hexit)’의 수혜를 볼 수 있진 않을까 기대 섞인 목소리가 나왔다.

그로부터 약 6개월이 지났다. 서울이 아니라 일본 금융시장에 외국인들의 발길이 머물기 시작했다. 지난 29일 싱가포르 플라스틱 제조업체 옴니플러스시스템이 일본주식예탁증서(JDR)를 도쿄증권거래소 마더스(벤처기업 중심) 시장에 상장했다. 지난 3월에는 대만 챗봇 스타트업인 애피어도 마더스 시장에서 거래를 시작했다. 대만 마케팅 기술 스타트업인 ‘awoo’는 애피어의 사례를 보고 일본 상장을 목표로 준비 중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벤처기업이 상장할 수 있는 아시아 시장 중 마더스 시장 거래가 가장 활발하다는 것이 이들의 일본행에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다.

홍콩이 아시아의 금융허브에서 멀어지는 가운데 일본은 도쿄를 중심으로 홍콩의 지위를 넘보고 있다. 도쿄증권거래소는 아시아 벤처기업을 마더스 시장으로 끌어오고자 아시아 각국을 돌아다니며 세미나를 열어 왔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 내각 역시 도쿄를 국제 금융 중심지로 바꾸겠다며 금융 투자 전문가들에 대한 영주권 특례제도 등을 제시하기도 했다. 도쿄는 높은 법인세 등 금융허브가 되기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곳이지만, 이를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펴고 있는 셈이다.

한국도 동북아 금융허브 구상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금융위원회는 금융 중심지 정책을 다시 세우겠다며 연구용역을 진행 중이다. 그런데 시장에선 방법론에 의문을 표하고 있다. 지역별 특화 금융산업을 육성하고 이를 연계함으로써 경쟁력을 키우겠다는 정부의 방향이 타당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번 연구용역 제안서엔 금융산업 특화가 가능한 후보 도시 선정에 대한 언급도 있다. 한국은 금융 중심지가 서울 여의도와 부산 문현단지 두 곳으로 분산되고, 자본시장 최대 큰손인 국민연금조차 전북 전주로 내려가면서 되레 경쟁력만 낮아졌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금융 중심지에 대한 개념을 재정립하겠다며 실패한 지역별 특화금융 정책을 이어가겠다는 것이다. 증권가에선 금융 허브를 노린다면 외국 기업의 법인세를 깎아주거나 외환 거래 자유화를 지원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금융산업 특화도시를 조성할 게 아니라 해외 기업들과 금융회사가 오고 싶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얘기다. 그 조건이 무엇인지에 대한 자의적 판단이 아니라 객관적 분석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