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각장애인들의 세상을 넓힌다, 배리어프리 제안하는 소셜벤처 ‘플립’·‘오롯’

입력 2021-07-02 08:59
수정 2021-07-02 09:00
[한경잡앤조이 조수빈 기자 / 김수지 대학생 기자] 장애인들도 편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물리적·제도적 장벽을 허물자는 운동인 ‘배리어프리’. 한국의 배리어프리는 아직 나아갈 길이 많다. 그중 청각장애인에게 좀 더 넓은 세상을 제안하기 위해 세상에 뛰어든 소셜벤처를 소개한다.



“생소한 청각장애인 플로리스트가 지금의 바리스타처럼 되길” 꽃 정기배송 서비스 ‘플립’
소셜 벤처 플립의 박경돈(30) 대표는 군 생활 중 청각 손실을 경험한 후 청각장애인에 관해 관심을 가졌다. 청각장애인 중에서도 여성이 특히 직업 모델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된 박 대표는 일산 청각장애인 직업능력개발원을 방문했다. 실제 개발원 수료자의 80% 이상이 남성이었고 여성은 수료하더라도 취업률이 상당히 낮았다. 박 대표는 “이러한 현실이 여성 청각장애인에 가해지는 사회적 폭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서비스 시작 계기를 설명했다.

플립은 flower(꽃)과 leaf(잎)의 합성어로, 청각장애인 플로리스트가 ‘꽃잎’으로 이야기를 전해 작은 변화를 만들어간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하필이면 왜 꽃이었을까. 박 대표는 그것을 청각장애인만이 가지고 있는 특징이 담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청각장애인의 경우 많은 정보를 시각을 통해 인식한다. 비장애인에 비해 대부분 시야가 1.5배 넓고, 시각정보 습득이 빠르다. 실제로 박 대표는 “플로리스트 교육 현장에서 봤을 때 꽃의 색감, 조화, 배치 등 플로리스트 업무 능력 습득이 탁월했다”고 말했다.

꽃은 성수기와 비성수기의 차이가 뚜렷하게 나타나는 제품이다. 여름에는 수요가 적고, 졸업식 등의 행사가 많은 겨울에는 수요가 많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박 대표는 ‘정기배송 서비스’를 시작했다. 정기배송 서비스는 배송 기간과 꽃 사이즈를 선택할 수 있다. 전문 플로리스트가 2주나 4주 간격으로 꽃을 선정해 보내준다.

플립은 정기배송 서비스 외에도 카페 운영이나 교육 사업 등을 진행하고 있다. 파주시의 플립 카페에서는 플라워 레슨 등의 여러 문화 교육을 제공하기도 한다. 교육 사업으로는 장애인을 위한 바리스타 교육이나 플로리스트 교육과 같은 직업 문화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청각장애인 플로리스트 교육은 전문 속기사와 현직 플로리스트가 같이 진행한다. 8주간 이론과 실습 모두 병행해 진행한다. 꽃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와 더불어 상품화 과정을 위해 어떤 작업을 해야 하는지 알려준다. 이런 교육 시간은 청각장애인 본인이 플로리스트로서 소양이 있는지 확인하는 시간이다. 플립의 청각장애인 전문 플로리스트는 총 2명이다. 올해 추가로 채용할 계획이다.

플립은 지난해 6월, 베타 서비스로 첫 고객을 만났다. 72명을 대상으로 정기 구독 서비스를 시작했고, 현재는 약 2000명의 고객이 정기 구독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박 대표는 “고객 중 80%의 고객이 재구매를 하는 등의 결과를 바탕으로 연말까지는 만 명 정도의 고객을 확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런 노력 끝에 지난해 플립은 사회적기업 육성 우수기업으로 선정됐다.

박 대표는 이 일이 정말 뿌듯하다며 에피소드를 털어놨다. 그는 “새벽까지 사무실에서 일을 하고 있던 적이 있는데, 모르는 사람이 찾아온 적이 있다”며 “자신의 12살 딸이 청각 장애가 있는데, 이런 기업이 있어서 고맙다고 나에게 말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박 대표는 “그런 분들의 마음을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잘해나가야겠다고 다짐을 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플립은 ‘청각장애인 플로리스트’라는 직업 모델 외에도 더 많은 직업 모델을 만들어나갈 계획이다. 박 대표는 “고객들이 우리 기업을 착한 기업이어서 제품을 구매해주는 것이 아니라 상품 그 자체로 경쟁력이 있어 구매해주면 좋겠다”며 “장애인이라는 틀 내에서 받는 인정보다는 경쟁을 통해 서비스 자체를 인정 받고,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바꿔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누군가에겐 문화가 1순위, 장애인에 대한 소외 현상 막아야”, 배리어프리 자막서비스 ‘오롯’
소셜 벤처 ‘오롯 영화를 읽는 사람들(이하 오롯)’은 가톨릭대 인액터스에서 출발해 지난해 10월에 법인을 설립했다. 최인혜(24) 대표는 네이버 웹툰 ‘나는 귀머거리다’를 보고 창업을 결심했다. 최 대표는 “청각장애인들은 영화를 보러 가기 전, 인터넷에서 스포일러를 다 확인하고 외우고 간다”고 말했다. 한글 자막이 있긴 하지만, 해외 영화처럼 배경음·효과음 등이 삽입되어 있지 않기에 청각장애인들은 영상의 맥락을 파악하기 힘들다.

배리어프리 자막서비스는 청각장애인이 영상물에 나오는 모든 소리 정보를 문자로 제공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오롯은 ‘모두를 위한 자막’이라는 것을 내세우고 있다. 최 대표는 “배리어프리는 당연한 것”이라며 “전 세계가 열광하고 공감했던 영화 ‘미나리’나 ‘기생충’에도 배리어프리 자막은 제공되지 않는다. 소통의 부재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고 서비스가 필요한 이유를 설명했다.

오롯은 자막이 필요한 영상 콘텐츠를 전부를 대상으로 자막을 달고 있다. 최근에는 극단 ‘동화’에서 진행한 연극에도 자막을 제공했다. 이런 실시간 자막서비스는 스크린에 띄어 발화 시간에 맞춰 넘기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최 대표는 “영화, 드라마, 연극을 시청하는 것이 단순한 여가생활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런 문화가 사회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소재가 된다”며 “이런 서비스가 많아진다면 배리어프리 즉,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간극이 좁혀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롯은 독립영화 외에도 OTT 서비스를 제공하는 ‘왓챠(WATCHA)’에 자막을 제공하고 있다. ‘독전’, ‘아이캔스피크’, ‘완벽한 타인’ 등 13편의 영화에 자막을 제공했다. 왓챠 측은 “언제, 어디서, 누구든 편히 감상할 수 있도록 배리어프리를 함께 하겠다”고 말했다.

자막 작업은 봉사자들이 진행하고 있다. 약 3년 동안 1000명 이상의 봉사자가 참여했다. 봉사자 1명당 약 10분(영상 길이)의 자막을 제작한다. 영화 한 편을 제작할 때 최소 10명의 인원이 참가하게 된다. 한 편의 영상에 일반 봉사자와 기타 검수 인력을 더해 20명 내외가 참여한다. 최 대표는 봉사자들에 대해 “봉사자들은 자신이 몰랐던 문화 소외 현상을 직접 해결하는 주체가 돼 활동하는 것이 뿌듯하다고 했다”고 전했다. 비대면 봉사다 보니 코로나19 이후 봉사자들의 수요가 늘어났다. 한 달의 50명을 선정해 자막서비스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배리어프리 자막서비스는 총 4단계다. 가장 첫 작업은 영상에 나오는 모든 소리를 받아 적는 것이다. 이후 소리와 자막의 속도를 맞추는 싱크 작업을 진행한다. 싱크 작업까지 봉사자가 참여한다. 싱크 작업 후에는 내부 관계자가 직접 검수한다. 마지막으로 자막의 대상이 되는 청각장애인이 직접 검수해 그들에게 가장 편리한 자막을 만들고 있다. 오롯은 올해 내 ‘청각장애인 검수자’라는 직업을 만들어 청각장애인을 고용할 계획이다. 최 대표는 청각장애인 검수자에 대해 “가장 좋은 자막은 본인들이 아는 것이니까 그들을 직접 고용한다면 정보 서비스나 문화 콘텐츠 쪽에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말했다.

해결해야 할 문제도 있다. 영상물은 특정인의 창작물이기에 저작권이라는 큰 문제가 있다. 그는 “청각장애인들이 특정 영상의 자막을 원하더라도 제작사나 영화사에서 허락을 안 해주면 공급하지 못한다”며 “배리어프리 자막에 대한 논의가 국내에서 별로 나오지 않았기에 계약 등의 서류상 작업이 어렵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해외에서는 배리어프리 자막서비스가 의무화인 곳이 많다. 한국은 인식 개선뿐만 아니라 법률적인 부분의 뒷받침이 함께 이루어져야 하는 상황이다.

최 대표는 오롯의 비전에 대해 “누구나 모자람 없이 온전하게 문화를 향유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화를 당연하게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어 그는 “문화 선택권이 한정적이지 않도록 신속하게 제공할 것이다”고 포부를 밝혔다.

subin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