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구체적인 윤곽이 드러난 올해 2차 추가경정예산안의 특징은 여당과 정부 한쪽이 일방적으로 잃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재난지원금 지급 대상에서 상위 20%를 제외하기로 결정된 것은 선별지급 원칙을 강조해온 기획재정부의 면을 살려준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1조원 규모의 상생소비지원금(카드 캐시백)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시행되면서 여당도 위신을 차릴 수 있게 됐다. 이날 한 라디오방송에 출연한 전재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사실상 전 국민 지원”이라고 밝힌 것이 단적인 예다.
이는 청와대를 중심으로 당정이 타협한 데 따른 결과다. 재난지원금 대상을 놓고 여당이 ‘전 국민 지급’, 정부가 ‘하위 70% 지급’을 주장하며 서로 맞붙을 때부터 청와대는 이를 물밑에서 조율해왔다. 청와대 관계자는 지난 22일 “특별히 한쪽으로 쏠려서 가기보다 기술적인 조정이 가능할 것”이라며 “지급 대상을 80%나 90%로 올리는 선에서 절충점을 찾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결국 2차 추경의 가장 중요한 쟁점이 된 재난지원금 대상 선정은 1주일 전 청와대가 제시한 시나리오대로 흘러온 셈이다.
청와대는 이번 추경을 준비하며 과거보다 한층 적극적으로 당정 간 조율에 나섰던 것으로 전해졌다. 올초 1차 추경 논의 과정에서 당정 간 갈등이 대통령 및 여당 대선 후보 지지율에 악재로 작용했다고 판단한 데 따른 것이다. 당시 홍남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자신의 페이스북 등을 통해 재정건전성과 선별 지원 원칙을 강조했다.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 정세균 전 총리 등과도 각을 세웠다.
청와대는 특히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월 “코로나에서 벗어날 상황이 되면 국민 사기 진작용 지원금 지급을 검토할 수 있다”고 한 대목을 크게 신경 쓴 것으로 전해졌다. 전 국민 80%를 대상으로 재난지원금을 지급하되, 카드 캐시백으로 전 국민 지급 효과를 내도록 하는 설계는 이렇게 해서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추경 논의 과정에는 여당이 정부에 특별한 요구나 압박을 가하지 않은 것도 특이한 일이다. “이 나라가 기재부 나라냐”(정 전 총리)는 거친 목소리까지 나왔던 1차 추경 논의 때와 상반된다. 홍 부총리도 이달 초 선별지급 원칙만 한 차례 밝혔을 뿐 별다른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정부 안팎에서 “청와대의 위신을 세워주는 가운데 당정이 조용히 타협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