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석 달 전 “(지금까지) 신용도가 높은 사람은 저(低)이율을, 낮은 사람은 고(高)이율을 적용받는 구조적 모순이 있었다”는 엉뚱한 발언으로 논란을 불렀다. ‘고신용=저금리’라는 금융의 대원칙을 국무회의 자리에서 부정한 것이어서 비판이 쇄도했다. 그러자 청와대는 “안타깝다고 한 얘기가 잘못 전달됐다”며 진화에 나섰고 사태는 해프닝으로 마무리됐다.
그런데 ‘오해’라는 당시 청와대 해명과 달리, 고신용자가 높은 이자를 부담하는 기막힌 일이 눈앞의 현실이 됐다. 마이너스통장 대출 때 신용이 양호한 고객에게 더 높은 이자를 물리는 ‘금리 역전’ 현상이 5대 은행 중 신한·하나·농협은행 등 세 곳에서 확인됐다(한경 6월 28일자 A8면 참조). 정부 입김이 먹히는 농협은행에선 신용 1등급 마이너스통장 금리가 연 2.93%인 반면 5~6등급은 연 2.70%다. 신한은행에서도 1등급 고객이 4등급보다 0.23%포인트나 높은 이자를 부담하고 있다.
이런 이상한 장사를 한 은행들은 ‘평균의 함정’이자 통계 착시일 뿐이라고 해명하지만 곧이곧대로 믿기 힘들다. 누가 보더라도 ‘포용정책’을 강조하는 정부 압박에 굴복했거나 ‘알아서 긴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 정부 들어 ‘관치금융’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비등하긴 했지만 ‘돈 떼먹는 사회’를 조장하는 ‘정치금융’의 등장을 보게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나.
은행 돈을 내 주머니처럼 생각하는 여권의 고질병은 최근 반(反)시장·반헌법적 수위를 넘나드는 모습이다. 유력 대선주자가 ‘최고금리를 연 10%로 제한하자’는 과격한 주장을 편 게 지난달 일이다. 여당 지도부가 ‘이자멈춤 특별법’을 언급하자 금융당국이 ‘대출만기 일괄 연장과 이자상환 유예조치’를 은행에 요구하기도 했다. 한계기업에 대한 무조건적 지원은 공멸을 부른다는 경고가 쏟아지는데도 5년 내내 흑백논리로 금융산업을 융단폭격하고 있다.
‘어려운 서민들 좀 도와주자는데 뭐가 잘못이냐’는 게 여권의 강변이다. 대학교육에 이어 ‘산업의 혈맥’인 금융마저 복지사업으로 전락시킬 태세다. 부끄러움도 모르고 6대 민간 금융협회 수장 중 5명을 낙하산으로 채운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규제산업이라 정부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는 약점을 잡아 경제원론까지 다시 쓰려는 폭주를 언제까지 봐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