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도주가 없다. 성장주와 가치주가 상승률 상위 종목 자리에 앉았다 내려오기를 숨 가쁘게 반복하고 있다. 최근 한국 증시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미국 증시에서도 마찬가지다. 월가에서는 ‘성장주냐 가치주냐’ 논쟁을 넘어 ‘아직 남아 있는 고품질 저평가 종목은 무엇인지’에 주목하라는 조언이 나온다.
금리 따라 엎치락뒤치락27일 CNBC에 따르면 미국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의 딥 메타 부사장은 최근 고객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우리는 여전히 저렴한 가격에 거래 중인 질 좋은 주식을 찾고 있다”며 “현금 창출 능력과 생산성, 탄탄한 재무구조가 중요한 품질 지표”라고 강조했다. 기술주와 성장주의 주도주 자리다툼에 투자자들이 혼란을 호소하자 ‘품질’과 ‘가격’부터 따져보라고 조언한 것이다.
지난해 미국 증시의 고삐를 쥔 기수는 명확했다. 코로나19 충격을 회복하는 과정에서 빅테크 기업들이 주가를 밀어 올렸다. 작년 11월 미국 S&P500 종목의 시가총액 중 애플과 아마존 비중은 12%에 육박했다. 12월에는 코로나19 백신 개발 소식에 가치주가 힘을 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올 들어서는 금리가 출렁일 때마다 기술주와 가치주가 엎치락뒤치락하는 모양새다. 조익재 하이투자증권 전문위원은 “금리가 내리면 성장주가 가치주 대비 강세를 보이고 있다”며 “최근 미국 장기 금리의 하락세 속에서 나스닥지수가 사상 최고가를 경신한 게 그 예”라고 했다. 리오프닝 수혜 기술주에 주목사정이 이렇다 보니 이달 들어 월가에서는 기술주·가치주를 불문하고 고품질 저평가 주식을 추려낸 보고서가 쏟아지고 있다. 기술주 또는 가치주에 베팅하기보다는 개별 종목의 옥석을 가려야 하는 시점이라는 의미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지난 21일 하반기 투자 설명회에서 ‘경제회복과 정부 규제, 기준금리’를 기술주 투자자들이 올 하반기 주의해야 할 변수로 꼽았다. 다만 각종 악조건 속에서도 일부 기술주는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고 봤다. 근거는 실적 전망치다.
BoA가 최선호주로 꼽은 건 구글의 모회사 알파벳A다. 경기가 회복되고 기업활동이 활발해지면 구글의 광고 수익이 늘어날 것이라고 봤다. 알파벳A는 최근 2450달러 안팎에 거래되는데 BoA의 목표주가는 2755달러 수준이다.
전자상거래 기업 아마존의 경우 소비 회복에 대한 수혜를 볼 종목이라고 예상했다. 프리랜서 중개 플랫폼을 운영 중인 파이버와 온라인 중고차 거래 업체 브룸 역시 하반기 유망 종목으로 지목했다. 인력난과 자동차 공급 부족(쇼티지) 현상으로 수혜를 볼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 밖에 호텔 예약 플랫폼 부킹홀딩스와 익스피디아 역시 리오프닝(경기재개) 수혜를 기대할 수 있는 기술주로 언급됐다. 덜 오른 여행·레저 업종 관심백신 접종 효과 등으로 한동안 급등세를 보였던 경기민감주의 경우 옥석 고르기가 더욱 까다로워졌다. 모건스탠리는 최근 ‘아직 싼 경기민감주가 남아있나?’라는 보고서를 통해 여행과 레저 업종 중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수준)이 싸고 가격이 크게 오르지 않은 종목 여섯 가지를 추려냈다. 모건스탠리 측은 “테이퍼링(자산 매입 축소) 시기가 다가오는 만큼 아주 섬세하게 투자 성향과 업종을 선택해야 한다”며 “이들 종목은 합리적인 가격에 이익의 질도 좋은 기업”이라고 했다.
모건스탠리는 프랑스 식품 서비스 회사 소덱스가 23%가량 상승 여력이 남아 있다고 봤다. 공항 식품 서비스 회사인 SSP는 올 들어 16% 올랐지만 7% 이상 추가 상승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이 밖에 영국 레스토랑업체 미첼앤드버틀러(M&B), 도박업체 플러터, 영국계 호텔·레스토랑 운영사 휘트브레드, 도박업체 에볼루션 등도 유망하다고 진단했다.
골드만삭스도 최근 10% 이상 더 오를 수 있는 종목 10가지를 제시했다. 정유회사 BP, ENI, 비행기 엔진을 제조하는 롤스로이스, 영국 항공사 이지젯, 독일 스포츠웨어 제조사 아디다스 등이다. 코로나19 타격을 받은 뒤 대폭 실적 개선이 예상되는데 주가는 아직 덜 오른 종목들이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