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ESG] ESG NOW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확산에 따른 ‘탈석탄’ 기조의 후폭풍이 마침내 석탄발전 회사를 덮쳤다. 채권 시장에 역대급 자금이 몰려들고 있지만 삼척블루파워의 회사채 수요 모집에는 단 한 푼의 자금도 들어오지 않았다. 삼척블루파워의 신용등급이 ‘AA급’으로 우량한 데다 상대적으로 높은 발행 금리를 내건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이례적인 일로 투자 업계는 받아들이고 있다.
수요예측에 대거 불참...미매각 ‘쇼크’
강원도 삼척에 석탄화력발전소를 짓고 있는 삼척블루파워는 3년 만기 회사채를 1000억원어치 발행하려 지난 6월 17일 수요예측을 진행했다. 회사채 발행에 앞서 기관투자가들을 상대로 미리 매수 주문을 받은 것이다. 하지만 하나도 팔리지 않았다. 국내 ‘큰손’과 금융사들이 ‘탈석탄’ 원칙을 내세우며 수요예측에 대거 불참했기 때문이다. 회사채 전량 미매각 사태는 올해 들어 처음이다.
삼척블루파워는 신용등급이 AA-다. 국내 신용평가사들이 부여하는 신용등급 가운데 네 번째로 높다. 포스코에너지(29%), 두산중공업(9%), 포스코건설(5%) 등이 주요 주주다. 이번에 금리를 최대 1%포인트 더 얹어주겠다고 했지만 투자자들의 마음을 돌리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올해는 A급과 BBB급 회사채에도 뭉칫돈이 몰릴 정도로 발행 시장이 호황”이라며 “이런 가운데 나온 미매각이라 다소 충격적”이라고 말했다.
투자자들이 원래부터 삼척블루파워를 기피한 건 아니었다. 삼척블루파워가 지난해 9월 발행한 회사채는 1000억원어치가 완판됐다. 1600억원의 매수 주문이 몰렸다. 하지만 지난 9개월 새 분위기가 급변했다. 석탄발전에 대한 정부 정책이 비우호적으로 변한 것이다. KB금융지주, 하나금융지주, NH농협금융지주, 국민연금기금 등 큰손 투자자들이 잇달아 탈석탄을 선언했다.
국내 신용평가사들이 최근 삼척블루파워 신용등급 전망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내린 것도 이런 환경 변화를 의식했기 때문이다. 장수명 한국신용평가 수석애널리스트는 “비우호적인 정부 정책으로 사업 불확실성이 커졌고, 금융사들이 탈석탄 기조로 향후 자본 시장을 통한 자금조달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평가했다.
환경단체들, 자산운용사에 공개서한 ‘압박’
환경 및 지역 단체들의 적극적인 시위도 삼척블루파워 미매각 사태에 한몫했다. 기후솔루션, 녹색연합 등 24개 단체로 구성된 ‘석탄을 넘어서’는 지난해부터 삼척블루파워 건설과 금융 투자를 반대하는 캠페인을 벌여 왔다. 자산운용사들에 삼척블루파워 회사채 투자 의사를 묻는 공개서한을 보내 “투자하지 않겠다”는 답변을 받아내기도 했다.
미매각된 삼척블루파워 회사채는 인수단으로 참여한 6개 증권사가 떠앉게 됐다. 삼척블루파워가 증권사를 상대로 1000억원을 조달한 셈이다.
삼척블루파워는 약 4조9000억원을 들여 석탄화력발전소를 짓고 있다. 이 중 1조원을 회사채로 발행해 조달할 계획이다. 이번 1000억원을 포함해 지금까지 3000억원어치를 발행했다. 2024년까지 7000억원을 추가로 발행하게 된다.
증권사들과 1조원어치 회사채 인수 확약을 맺어 놓았기 때문에 앞으로도 7000억원까지는 증권사가 회사채를 사준다. 문제는 그 이후다. IB 업계 관계자는 “1조원까지는 증권사가 자금을 조달해준다고 쳐도 그 이후에는 누가 삼척블루파워 회사채를 사줄지 불확실성이 크다”며 “앞으로 만기 회사채를 차환하는 데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박스/ ESG 열풍으로 코너에 몰리는 석탄발전 회사
국내 신용평가사인 한국기업평가와 NICE신용평가는 지난 5월과 6월 국내 민간 석탄발전 회사 3곳의 신용등급 전망을 무더기로 낮췄다. 삼척블루파워, 강릉에코파워, 고성그린파워의 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내린 것이다. 이들의 신용등급은 네 번째로 높은 AA-인데, 앞으로 A+나 그 밑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커졌다는 뜻이다.
국내에서 민간 석탄발전 회사는 아직 4곳뿐이다. 이마저도 발전소를 완공하고 가동에 들어간 곳은 GS동해건설뿐이다. 나머지 3개사는 2021~2024년 중 가동을 목표로 발전소를 짓고 있다. 10여 년 전만 해도 정부는 민간 회사의 석탄발전 시장 진입을 독려했다. 전력 수급 불안을 해소하고, 공기업 위주로 구성된 에너지 발전 시장에 경쟁을 통한 활력을 불어넣어 줄 것으로 기대해서였다.
하지만 2019년부터 신규 석탄발전소 건설 금지, 노후 석탄발전소 폐지 등 ‘탈석탄’으로 정부 정책이 급선회하며 석탈발전의 위상이 급격히 흔들리고 있다. KB금융지주 등 주요 금융 그룹들도 잇달아 탈석탄을 선언하고 있다.
민간 석탄발전사들의 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내린 김미희 한국기업평가 수석연구원은 “정부 정책이 비우호적으로 바뀌고 있어 사업 전망의 불확실성이 커졌다”며 “투자비 불인정 위험, 회사채 차환 위험 등도 우려된다”고 말했다.
투자자들은 신용등급 AAA인 한국전력 발전사들에도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한국남동발전은 석탄 발전용량이 8989메가와트(MW)로 국내 전체 석탄 발전용량의 25.1%를 차지하는 최대 석탄발전사다. 한국동서발전(19.4%), 한국서부발전(17.0%), 한국남부발전(16.9%), 한국중부발전(14.2%)을 더하면 한전 발전 자회사가 국내 석탄발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92.5%에 이른다.
한전 발전 자회사들의 회사채 발행은 아직 차질 없이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인기가 조금씩 떨어지는 추세다. 현재 한전 발전 자회사들의 5년 만기 개별 민평 금리(민간 채권평가사들의 시가평가 금리 평균)는 연 1.977%로 같은 만기의 한국수력원자력(연 1.895%)보다 0.082%포인트 높다. 1년 전에는 이 차이가 0.022%포인트에 불과했다.
김상만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한전 발전 자회사들의 채권 금리는 한국수력원자력과 비슷하게 움직였다”며 “탈석탄이 이슈로 떠오르면서 금리 차이가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