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건강보험공단의 경영평가 등급이 1주일 만에 ‘우수(A등급)’에서 ‘양호(B등급)’로 하락했다. 한국가스안전공사 등 3개 기관은 ‘미흡(D등급)’에서 ‘보통(C등급)’으로 올라 성과급이 크게 늘어나게 됐다. 전주 발표된 공공기관 경영평가 결과에서 사상 초유의 계산 오류가 발견돼 대대적 수정을 한 결과다. 이로 인해 공공기관 경영평가를 책임지는 기획재정부의 신뢰도가 추락하게 됐다.
▶본지 6월 24일자 A13면 참조 22개 기관 평가 수정
기재부는 25일 공공기관운영위원회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을 담은 2020년도 공공기관 경영평가 수정 결과를 의결했다. 수정결과 10개 공공기관의 종합평가 등급이 바뀌었다. 공무원연금공단, 국민건강보험공단, 농림식품기술기획평가원, 연구개발특구진흥재단, 한국과학창의재단 등 5개 기관의 평가 등급이 한 단계 하락했다. 건보공단은 전주 경평 결과 발표 후 6년 연속 A등급을 받았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지만 이번 경평 결과 수정으로 6년 만에 B등급 성적표를 받았다.
한국가스안전공사, 한국산업인력공단, 한국연구재단, 한국기상산업기술원, 한국보육진흥원 등은 한 단계 등급이 올랐다. D등급에서 C등급으로 상향된 한국가스안전공사, 한국산업인력공단, 한국기상산업기술원 등은 경영개선계획 제출 대상에서 제외됐다. 기관장이 6개월 이상 재직했을 경우 받게 되는 전보 조치 대상에서도 빠진다. 무엇보다 내년 경상경비 삭감(0.5~1%포인트) 대상에서 제외되고 성과급을 받게 된다는 점도 큰 차이다. D등급일 때는 임직원 모두 성과급을 받을 수 없지만 C등급이 되면 기관장은 연봉의 48%, 직원은 월 급여의 100%를 성과급으로 받을 수 있다. 해임건의 대상 기관이었던 한국보육진흥원은 ‘아주미흡(E등급)’에서 D등급으로 평가가 수정됐지만 2년 연속 D등급을 받아 해임 건의는 유지됐다.
종합 등급 이외 경영관리와 주요사업 점수 등 세부 지표가 바뀐 기관은 13개였다. 종합 등급과 세부 지표 중 하나라도 변경된 기관은 총 22개였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 등급은 ‘미흡(D등급)’이 유지됐다. 기재부 관계자는 “LH 평가에서는 오류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오류는 LH 등 공기업 평가단이 아니라 준정부기관 평가단에서 발생했다”고 덧붙였다. 사상 첫 엉터리 채점공공기관 경영평가 결과 발표 후 오류가 발견돼 대대적 수정이 이뤄지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1984년 공기업을 대상으로 한 경영평가가 시작된 이래 유사한 사례는 없었다.
대규모 계산 오류가 발생하면서 기재부의 공공기관 경영평가에 대한 신뢰성에도 큰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기재부는 엉터리 채점이 이뤄진 것은 기관별로 서로 다른 가중치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매년 말 공운위에서 경영평가에 적용할 기준을 확정한다. 이 기준에 따르면 사회적가치 비계량 지표 중 일자리 창출 등 4개 항목의 배점은 기준 배점의 50~150% 범위에서 기관이 자율적으로 배점을 설정할 수 있게 돼 있다. 하지만 평가단이 기관별로 설정한 배점을 적용하지 않고 동일한 기준으로 점수를 매겨 오류가 발생한 것이다. 한국가스안전공사와 신용보증기금 등 2개 기관은 단순평가점수 입력 누락으로 등급이 조정됐다.
기재부는 이 같은 오류를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등급을 부여받은 공공기관들이 강력히 문제제기를 하자 그제야 배점 적용이 잘못됐다는 점을 인지하고 수정 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브리핑을 진행한 안도걸 기재부 2차관은 “공공기관 경영평가의 신뢰가 크게 훼손됐다”고 사과했다. 그는 “평가오류에 책임이 있는 준정부기관 평가단장, 담당 간사, 평가위는 해촉하고 조세재정연구원·평가단 간 평가용역 계약 위반 또는 불이행을 근거로 계약 해지, 기성금 삭감 등 예산·회계상 조치도 취할 예정”이라며 “재발 방지를 위해 평가단 내부에 평가검증단도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강진규/노경목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