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의 머스크, 스위스 MSC, 중국 코스코, 프랑스 CMA CGM, 한국의 HMM이 속한 산업은 무엇일까? 바로 선박을 이용하여 재화를 운송하는 사업인 ‘해운’이다.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침체되었던 경기가 올해 들어 다시 살아나기 시작하면서 해운업 운임도 상승하고 있다. 세계 컨테이너선 운임 지표라 할 수 있는 상하이 컨테이너 운임지수(SCFI: Shanghai Containerized Freight Index)는 지난 18일 기준 3748.36을 기록하면서 최고치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이는 세계 교역과 경기가 회복되고 있다는 신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해운 기업들은 선복량을 더 늘리고 있다고 한다. 이유는 무엇일까? 치킨게임과 규모의 경제지난 10여 년간 해운업의 경영 상황은 좋지 못했다. 2008년 미국 금융위기에 따른 경기침체로 2010년대 해운 기업끼리 ‘치킨게임’으로 운임을 낮추는 출혈경쟁을 지속했다. 그 과정 속에서 국내 업체 ‘한진해운’은 경영 부실이 심화되어 파산에 이르렀고 이를 현대상선이 일부 흡수하여 지금의 HMM이 되었다. 하지만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이 경쟁할 때에 비하면 선복량(배에 실을 수 있는 화물의 총량)이 줄어들었다. 현재 HMM은 81만TEU(1TEU는 20피트짜리 컨테이너 1개)로 세계 8위를 기록하고 있다. 선복량 규모도 줄어들었지만 무서운 것은 세계 1, 2위 해운 회사의 규모가 더욱 커졌다는 점이다. 머스크, MSC는 각각 411만TEU, 397만TEU의 선복량을 기록하고 있다. 두 기업은 ‘2M’이라는 해운동맹을 맺으면서 점유율을 높이고 선복량을 더욱 늘리고 있다고 한다.
해운업계의 선두 기업들이 이렇게 선복량을 늘리려는 데는 ‘규모의 경제’가 있다. 규모의 경제(Economies of Scale)란 생산 주체가 생산요소의 투입량을 증가시킴에 따라 장기평균비용이 감소하고 이익이 늘어나는 경우다.
해운기업이 선복량을 늘리기 위해 선박을 많이 발주하는 것도 규모의 경제 효과를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배 한 척을 건조하여 운행하기 위해서는 많은 비용이 소요된다. 초기 ‘고정비용’이 많다는 의미다. 하지만 선박이 건조되어 운행을 시작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작은 배보다는 큰 배에 많은 재화를 운반하면 단위당 비용이 하락하고 수익이 상승하게 된다. 특히 해운과 같이 초기 고정비용이 많이 드는 업종이면 규모가 클수록 치킨게임에서 많은 선복량을 바탕으로 다른 경쟁업체에 비해 경쟁력이 상승한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경영전략을 짜야HMM도 규모의 경제를 통해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적어도 글로벌 선사와 경쟁할 수 있으려면 200만TEU 정도까지는 선복량을 늘려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물론 당장 운임비가 급상승하면서 이에 대한 대응이 필요하다. 하지만 2008년 이후 운임이 악화된 것도 해운 기업들의 경쟁적인 선박 발주로 공급이 많아진 점이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다. 경제학에서 지적하는, 최적산출량을 넘어서 ‘규모의 불경제’가 발생하는 구간까지 선박을 늘린 것이다. 따라서 현재의 운임 상승이 코로나19 이후 급증한 수요에 따른 일시적인 요인인지, 장기적으로 운임 상승이 지속될지를 잘 분석해야 한다.
잘못된 경영전략으로 국내 대형 해운 기업이 몰락한다면 ‘소국 개방경제국’인 한국의 수출과 수입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한국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수출입 비율이 2020년 기준 72.9%다. 무역 실적에 따라 경제 성장의 방향성도 달라질 수 있다. 대형 해운기업이 없으면 다른 나라 해운 기업의 선박을 빌려야 하는데, 운임 협상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 운송비용이 늘어날 수 있다. 그러면 기업의 경영비용도 전반적으로 상승하여 기업의 국제 경쟁력 측면에서도 부정적으로 작용한다. 한국도 글로벌 트렌드에 맞춰 해운산업 경쟁력을 강화할 방안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정영동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