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제목이 의아할 법도 하다. 물은 H2O인데 ‘H2O인가?’라니…. 저자가 물음표를 붙인 건 그 밖의 다른 것이 있을 수 있다는 상상력을 자극한다. 요컨대 저자는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이 과연 옳은가’라는 물음에서 출발한다.
가장 단순하고도 명료한 명제를 가지고 이미 알고 있는 지식의 잘못된 정보와 오류를 되짚어봄으로써 과학적 문제의 범위를 역사나 철학의 문제로까지 확장한다. 저자는 과학사의 여러 장면을 오버랩하거나 전후를 추적하면서 우리의 믿음 체계를 집요하게 추궁한다. 책의 두께가 주는 압박감만큼이나 깨달음의 과실도 크다는 사실이 단순한 이치가 아니라 명확하게 와닿는 것을 느끼게 만든다. 물론 저자의 논리와 생각을 잘 따라가야 하지만.
저자는 우선 물이 화합물이라는 것이 최초로 밝혀진 18세기 후반의 화학혁명을 상기시킨다. 당시에 라부아지에의 이론이 많은 난점에도 불구하고 정설로 받아들여지게 된 배경과 산소라는 명칭 자체가 산성에 대한 그릇된 이해에서 출발했음을 ‘상보적 과학’의 시선으로 재구성한다. 상보적 과학이란 다른 생각과 이론으로 기존의 정설을 보완하려는 것인데, 불의 원소인 플로지스톤을 기반으로 한 화학은 매우 설득력이 있었으나 때 이르게 폐기됐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그 이후의 화학사에서 플로지스톤 이론이 다른 이름으로 재도입됐다는 것에 저자는 안도한다.
두 번째 장에서는 물의 전기분해를 둘러싼 문제를 정면으로 파헤친다. 물이 원소가 아니라 화합물이라면 수소와 산소로 분해가 가능할 텐데 왜 두 기체가 한 곳에서 나오지 않고 서로 떨어진 양극과 음극에서 나타나는지 의문을 갖는다. 이를 통해 전기분해는 사실 분해가 아니라 합성이라는 빌헬름 리터의 이론에 수긍하면서 결과적으로 이런 일련의 과정 속에서 당대의 전기화학이 괄목할 만한 성취와 진보를 이뤄냈음에 주목한다.
세 번째로 저자는 물을 이루는 원소의 원자가 몇 개인지, 그것을 어떻게 알았는지를 살펴본다. 1808년 존 돌턴에 의하면 물의 분자식은 HO다. 현대인의 눈에 익숙한 H2O라는 분자식은 아보가드로가 처음 밝혔는데, 이는 사실 가설 위에 가설을 세워 얻어낸 것이다. 당시 과학자들이 보기에는 전혀 신빙성이 없어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데 반세기가 걸렸다. 그 반세기 동안 원자-분자 화학시스템은 최소한 다섯 가지로 분화해 복잡한 상호작용을 거쳐 H2O라는 분자식에 서서히 합의할 수 있었던 것. 그러나 그 합의 시점에서도 H2O가 옳다는 절대적인 증명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한다.
앞에서 열거한 바와 같이 저자는 과학에서 기존의 ‘표준적 실재론’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그 대안으로 ‘능동적 실재주의’를 제시한다. 능동적 실재주의는 우리 자신을 실재에 최대한 노출시키기로 결심하는 과학적 태도이며, 우리가 불변의 진리를 소유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시도가 아니라 실재에서 배우는 현실적인 방법을 촉진하기 위한 노력이라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또 하나, 저자는 모든 요구를 충족시키는 완벽한 이론이나 관점에 도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과학에서의 다원주의를 내세운다. 여기서 저자가 옹호하는 다원주의는 백화제방식의 한가한 선언이 아니라 방치된 99송이의 꽃을 능동적으로 피우려는 결심이자 노력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완벽한 단일 시스템을 발견할 성싶지 않다면 다수의 시스템을 보유하는 게 합당하다는 것이다. 단 하나의 진리가 지배할 법한 과학에서 풍요로운 다원성을 읽어내고 권장하는 이 책의 메시지는 정해진 답을 비판 없이 받아들이도록 하는 주입식 과학교육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이며 세계적 과학철학자인 저자의 《물은 H2O인가?》는 《온도계의 철학》에 이은 ‘상보적 과학’ 프로젝트의 두 번째에 해당한다. 과학에서의 진리란 무엇이고 그것을 추구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돌이켜보게 하는 울림이 크다. 신선한 통찰력과 예리하고 풍부한 과학·철학사적 탐구로 읽어낸 기념비적인 성과물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전장석 기자 sak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