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6월22일(06:52) 자본시장의 혜안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백인·남성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미국 사모펀드(PEF)업계가 인력의 인종·문화적 다양성 확보에 나섰다. 연기금 등 기관투자자들이 ESG(환경·사회·지배구조)투자를 확대하고 나서면서 인력의 다양성이 확보됐는지를 위탁 운용사 선정 기준으로 내세우면서 나타나는 변화다.
최근 글로벌 PEF 운용사인 아레스 매니지먼트와 아폴로 글로벌 매니지먼트, 오크트리캐피털 등 3개사는 최근 더 많은 흑인 인력을 업계에 유입시키기 위해 공동 이니셔티브(Joint Initiative)를 설립하고, 향후 10년 간 각사가 3000만 달러씩 총 9000만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계획엔 3개 흑인대학(HBCUs)과의 파트너쉽이 포함된다.
이 이니셔티브는 비영리법인을 설립, 대상 학교에서 현업자들의 멘토링, 장학 프로그램, 펜실베니아 대학 와튼 스쿨이 고안한 특별 커리큘럼 등 사모펀드 전문 인력 양성을 위한 교육 과정을 설립할 계획이다. 현재는 다른 인종의 입학도 가능하지만, 학생 대부분인 흑인 대학에 대한 지원을 통해 사모펀드 업계에 특히 드문 흑인 인력을 육성한다는 것이 이번 이니셔티브의 목적이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이번 이니셔티브는 아레스의 공동 창업자 토니 레슬러(Tony Resseler)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미국프로농구(NBA)팀 애틀란타 호크스의 구단주이기도 한 레슬러는 흑인 대학이 밀집한 애틀란타 지역 학생들이 사모투자 업계에 거의 진출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보고 이니셔티브 발족을 결심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이니셔티브는 향후 더 많은 운용사와 대학을 이니셔티브에 가입시키고 지원 대상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기업의 목적이 수익이나 주주 이익만이 아니며, 사회적 선순환을 주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 이니셔티브에 참여한 PEF들의 생각이다.
가치투자의 대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하워드 막스 오크트리캐피털 회장은 "주주 가치 극대화만이 기업의 목적이 아니라는 말이 이젠 더 이상 이상하게 들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업계선 이 흐름이 향후 양적 질적으로 확대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 같은 행보의 배경에는 PEF 시장의 '자금줄'인 연기금, 국부펀드 등 기관투자자들의 ESG드라이브가 있다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펀드 운용사에겐 생명줄과도 같은 출자자(LP)들이 운용사(GP) 역시 일정 수준 이상의 ESG경영에 나설 것을 요구하면서 보수적이었던 사모펀드 업계도 자발적인 변화에 나선 셈이다.
이미 캐나다연금투자위원회(CPPIB)나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CalPERS, 캘퍼스)등 해외 연기금들은 위탁 운용사 선정 뿐 아니라 투자 대상 기업에 대해 이사회 다양성 확보를 적극적으로 주문하고, 기준에 부합하지 않을 경우 적극적 주주활동에 나서고 있다. 국내 대표 연기금인 국민연금 역시 이르면 내년부터 위탁 운용사 선정 시 ESG 관련 이행 여부를 평가 기준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하지만 이 같은 움직임이 '성과'로 이어질 지에 대해선 아직 미지수다. 지난해 글로벌 PEF 칼라일 그룹이 내놓은 분석에 따르면, 여성·흑인·라틴·아시아계 이사가 2명 이상 등용된 기업의 3년간 수익률은 12.3%로, 소수인종 이사가 전혀 없는 기업의 수익률 0.5%을 크게 상회했다. 하지만 인종 다양성을 갖춘 것이 높은 수익의 이유였는지, 이미 높은 수익을 내는 기업이 인종 다양성을 챙길 수 있을 정도의 '여유'를 가져서 나온 결과인지는 아직 불확실하다는 지적도 만만찮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