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운영은 하루하루가 전쟁 같다고 한다. 늘 예측 못한 상황이 발생하고, 상황마다 의사결정의 기로에서 고민하는 것이 경영의 본질이다. 이렇듯 예상치 못한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현대 디지털 기술로 더 나은 의사결정을 내리게 할 수는 없을까? 인공지능(AI) 기술을 결합한 ‘디지털 트윈’ 기술에서 그 답을 찾고자 한다.
퇴근시간 부산 다대포로 향하는 96번 버스에서 하차하려던 한 여성 승객의 눈길이 좌석에 앉은 60대 남성에게 꽂혔다. 졸고 있는 듯했는데 뭔가 불길한 생각이 든 그녀는 남성에게 다가가 살폈다. 그러고는 남성을 버스 바닥에 눕히고 심폐소생술을 시작했다. 다행히 남성은 의식을 되찾았고,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받을 수 있었다.
이 이야기는 2016년 2월 부산대병원 권역외상센터에 근무하던 정다슬 간호사의 경험담이다. 당시 버스 승객 중 60대 남성의 이상을 직감한 사람은 정 간호사뿐이었다. 일반인은 감지하지 못하는, 노련한 전문가의 특별한 능력이란 게 있는 걸까?
의사결정 분야에서 ‘자연주의적 의사결정’의 개척자인 게리 클라인은 독특한 연구 방식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현장 연구자로 잘 알려져 있다. 극한 상황에서 직관에 의한 순간적 판단을 어떻게 향상시킬 수 있느냐가 연구의 핵심이었다. 병원 응급실이나 전시 작전 상황에서 신속히 의사결정을 해야 할 때 직관에 의존하게 된다. 클라인은 전문가일수록,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상황일지라도, 과거의 여러 경험을 유추하고 상관관계를 파악해 최선을 결정을 내린다고 주장한다. 풍부한 경험과 함께 상상력이 직관력의 또 다른 조건이라 얘기한다.
상상력은 경험하지 않은 가상의 상황을 연상케 해 경험하게 한다는 것이다. 경험이 과거 겪었던 상황에 대한 축적이라면, 상상력은 경험하지 않은 상황에 대한 인식과 경험을 쌓게 해준다. 클라인은 이를 ‘멘탈 시뮬레이션’이라고 했다. 머릿속 가상의 시뮬레이션을 통해 현실에서 경험하지 못한 환경에 대해 훈련한다는 의미다. 실제가 아니라 가상이지만 이 또한 새로운 경험을 가능케 한다. 훌륭한 직관은 결국 경험이라는 과거의 데이터와 시뮬레이션이라는 미래의 데이터로 만들어진다. 디지털 트윈이란 현실을 디지털 환경에서 구현해 현실과 가상을 연동하는 기술이다. 가상 환경과 실제 환경을 연동해 현실 세계 시공간의 제약을 극복하는 기술이다.
최근 제조업을 중심으로 디지털 트윈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이미 컴퓨터 그래픽을 활용해 현장 작업 현황을 3차원(3D)으로 시각화한 기업도 있다. 이렇게 현실을 컴퓨터 환경에서 재현하는 것, 그 이상의 가치는 무엇일까? 바로 클라인이 주장한 멘탈 시뮬레이션을 디지털 트윈으로 구현하는 기술이다. 훌륭한 직관력을 가진 사람이 다양한 멘탈 시뮬레이션을 통해 다양한 시나리오를 생성하고 이를 기반으로 훌륭한 판단을 내리듯이, 디지털 트윈에서 경험하지 못한 상황을 끊임없이 재현하고 이런 상황의 복합적인 상관관계를 AI로 학습시켜 최적의 의사결정을 내리게 하는 방식이다.
현대 AI의 핵심인 기계학습은 과거 데이터를 학습하는 방식이다. 과거 데이터를 통해 맥락을 파악하고 판단을 내리게 하는 개념이다. 그런데 과거 데이터가 없다면?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상황이 전개되면 과거 데이터를 통한 학습은 의미가 없을 수 있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디지털 트윈을 통해 과거가 아니라 미래의 가상 시나리오를 시뮬레이션하고, 이를 AI로 학습하게 해 풍부한 경험(과거 데이터)과 상상력(미래 시나리오)을 결합한 디지털 직관을 구현하는 것이다.
이런 기술은 KAIST 연구진이 반도체 물류 반송 및 자동 물류창고에 적용해 효용성을 검증한 바 있다. 늘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하는 제조 환경에서는 과거 데이터에만 의지할 수 없기 때문에 디지털 트윈으로 미래 시나리오를 생성해 과거와 미래를 함께 고려한 직관을 디지털화한 것이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이 이제는 사람의 직관을 디지털화하는 기술로 진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