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재무제표에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지표가 곧 도입됩니다. 기업들이 ‘돈을 얼마나 벌었나’에 이어 ‘어떻게 벌었나’를 공시해야 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기존의 ‘보여주기’ 활동으로 포장했던 기업들은 투자자와 소비자에게 외면받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국내 회계 분야 최대 학술행사인 ‘2021년 한국회계학회 국제학술대회(KAGM)’가 한국경제신문사와 한국공인회계사회 후원으로 지난 21일부터 이틀간 온라인으로 열렸다. ‘회계의 사회적 영향력과 외연의 확장’을 주제로 한 행사에 국내 회계학자 400여 명이 온·오프라인 채널로 참가했다. 일본회계학회(JAA)와 대만회계학회(TAA)도 참여했다. 학술대회에서는 ESG 지표를 재무제표 공시에 반영하는 내용이 가장 큰 이슈가 됐다. 참석자들은 “기업의 ESG 활동에 대한 검증이 질적으로 달라지게 되는 만큼 기업들의 대응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SG와 에너지 전환이 기업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수준을 넘어 국가 간 패권 경쟁으로 치닫는 점도 대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ESG 공시 보고 투자하는 시대 온다이형희 SK수펙스추구협의회 SV위원장은 기조강연에서 “올해 영국 유엔기후변화 당사국총회에서 국제회계기준(IFRS)재단의 ESG 관련 결정이 기업 재무공시 추세의 변곡점이 될 것”이라며 “지금까진 기업들이 지속가능경영보고서 등으로 보여주고 싶은 정보를 공시했지만 앞으로는 이해관계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정보를 일정 기준에 따라 의무적으로 공개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ESG 경영은 한때의 유행이 아니며 수십년간 축적된 성과가 둑을 넘어 쏟아지며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ESG 공시는 기업이 ‘돈을 어떻게 벌었나’를 보여주는 주요 지표로 자리매김될 전망이다. 협력회사를 쥐어짜거나 환경을 훼손해 이익을 낸 기업은 지속 가능성 없는 기업으로 평가받을 수밖에 없다.
이진규 삼일회계법인 ESG플랫폼 파트너는 “기업의 전통 재무제표로는 기업의 먼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며 “20년 이상 초장기 투자를 하는 연기금 투자자는 이미 ESG 기준으로 기업 생존 가능성을 판단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표준이 제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은 두고 보겠다는 기업은 뒤처진다”며 “유엔환경계획(UNEP) 산하 글로벌리포팅이니셔티브(GRI)와 미국의 지속가능회계기준위원회(SASB) 등이 오랜 기간 표준 지표를 마련해왔고 글로벌 표준 채택이 멀지 않았다”고 했다. GRI는 기업의 경제 환경 사회 관련 성과지표를 34개 이슈로 분류해 채택했고 미국 SASB는 77개 업종별 가이드라인까지 제시하고 있다. ESG, 국가 간 패권 경쟁으로국가 간 ESG 경쟁이 가속화하면서 패권 경쟁 양상을 보이고 있어 이에 대한 대비도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이형희 위원장은 “지난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파리 기후협약에 재가입하고 2조달러를 환경에 투자한다고 하자 세계 각국이 경쟁에 뛰어들었다”며 “그동안 참여가 미진했던 중국도 이번 기회에 석유 의존도를 낮춰 에너지 주권을 찾고 미국의 패권을 약화시킨다는 전략으로 앞장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은 에너지 전환을 1차 산업혁명에 비견, 반식민지로 전락한 과거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각오로 신산업 선점을 위해 막대한 재원을 쏟고 있다.
이틀간 열린 개별 세션에선 고등직업 교육위원회, 미래교육위원회, 의료회계위원회 등 다양한 분야의 회계 관련 연구 발표와 이슈 토론이 이어졌다. 미래회계위원회 세션에선 오문성 한양여대 교수가 ‘가상화폐 과세의 문제점과 개선방안’에 대해 발표했다.
강철승 중앙대 교수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 한국의 협력적 이익공유제 실현 가능성’이란 주제 발표를 통해 정부·여당이 추진 중인 이익공유제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강 교수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공동 목표 달성을 위한 전략적 이익 공유에 그쳐야 한다”며 “이를 강제하면 외국 기업의 경우 통상 분쟁으로 번질 수 있고, 주주 재산권 침해, 경영진의 배임죄 소지 등 여러 문제가 생긴다”고 지적했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