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한 레퍼토리는 가라"…여름밤 실험적 무대 '봇물'

입력 2021-06-22 17:10
수정 2021-06-23 01:26

여름은 공연예술 축제의 계절이다. 국악, 무용, 클래식 등 다양한 장르에서 다채로운 축제가 펼쳐진다. 특히 올해는 장르를 막론하고 실험적인 공연들이 여름밤을 수놓는다.

국립극장은 전통예술을 재료 삼아 색다른 무대를 마련한다. 다음달 2~24일 펼쳐지는 ‘여우락축제’를 통해서다. 음악과 무용, 미디어아트 등 전방위적으로 공연예술을 선도해 온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박우재가 예술감독을 맡았다.

올해 여우락축제에선 혁신적인 작품을 한데 모은 ‘디렉터스 랩’이 눈길을 끈다. 소극장인 별오름극장에서 관객 32명만 들여 선보이는 공연들이다. 다음달 13일엔 아쟁 연주자(김용성)와 가야금 연주자(박선주)가 무대 위에서 직접 명주실을 뽑으며 산조를 들려준다. 같은 자리에서 김경나 단국대 몽골연구소 교수가 누에실과 동북아시아 역사를 연관짓는 인문학 강좌도 열린다.

이어지는 공연도 이색적이다. 다음달 16일 별오름극장에서는 타악주자 고명진이 ‘나들’ 공연을 통해 국악 타악기와 서양 타악기의 앙상블을 선보인다. 양금부터 마림바, 비브라폰 등을 능란하게 다루며 즉흥 연주를 펼친다. 장난감 기차가 내는 기적소리도 타악기로 활용한다. 내달 21일에는 하수연(가야금) 황혜영(거문고) 듀오가 ‘두부의 달음’을 내놓는다. 두 연주자가 실제로 콩을 불리고 갈아 간수를 부은 후 두부가 완성되는 동안 독주를 펼치는 무대다.

이들 세 공연을 연출한 박우재 예술감독은 “기존 방식을 탈피해 자기만의 색깔을 만드는 예술가들을 모았다”며 “새로운 것이 나오려면 끝없이 새로운 방식을 시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용계에서도 여우락축제 못지않게 독특한 무대를 마련했다. 24~25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열리는 ‘한국을 빛내는 해외 무용스타 초청공연’이다. 프랑스와 미국, 일본 등 해외 명문 무용단 소속 무용수들이 기획한 프로젝트다. 각자 준비한 독무나 2인무를 연이어 춘다. 무용 프로그램 14개 중 8개가 국내 초연작이다.

무용 애호가들이 가장 기다리는 무대는 ‘봄의 제전’이다. 일본 다이루쿠다칸컴퍼니에서 11년째 활동 중인 무용수 양종예가 몸에 금칠을 한 채 무대에 오른다. 그는 제물로 선택된 소녀의 마지막 순간을 신들린 독무로 풀어낸다.

다른 문화권의 춤사위를 감상할 무대도 펼쳐진다. 미국 댄스시어터오브할렘의 무용수 이충훈이 흑인 문화의 정수를 담은 ‘소울 오브 후드’를 선보인다. 할렘 무용단의 유일한 동양인으로 활동 중인 그는 “흑인 무용수들만이 갖춘 ‘스웨그’(힙합 문화에서 멋을 지칭하는 은어)나 유연한 몸짓을 무대에서 펼칠 것”이라고 말했다.

클래식계도 올해 여름엔 스타일을 바꿨다. 다음달 28일 개막하는 평창대관령음악제가 신선한 레퍼토리를 메인 프로그램으로 선정한 것. 8월 2~3일 평창 알펜시아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음악회 ‘산(Alive)과 죽음’에서는 현대음악의 기초가 된 ‘12음 기법’(장·단조를 무시하고 모든 음정을 균등하게 사용하는 작곡법)을 창시한 쇤베르크의 ‘달에 홀린 피아노’와 러시아 대표 작곡가 스트라빈스키의 ‘페트르슈카’를 들려준다. 리오 쿠오크만이 지휘봉을 잡고, 손열음을 비롯해 이진상(피아노), 스베틀린 루세브(바이올린), 조성현(플루트), 조인혁(클라리넷) 등 쟁쟁한 연주자들이 무대에 오른다.

현대무용가 김설진도 음악에 맞춰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손열음은 “쇤베르크 레퍼토리는 음악사에서 중요한 곡인데 국내에선 연주 기회가 드물었다”며 “평창대관령음악제에선 이런 작품을 많이 들려주고 싶다”고 강조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