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금지법의 또 다른 문제는 차별 행위에 대한 손해배상을 하도록 하면서 입증 책임을 ‘가해자로 지목받은 사람’에게 부과한 점이다. 전문가들은 법의 일반원칙에 반하는 ‘독소조항’이라고 지적했다.
이상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평등에 관한 법률안(평등법)’과 장혜영 정의당 의원의 ‘차별금지법안’ 등에는 각각 ‘입증책임의 배분(제37조)’과 ‘증명책임(제52조)’ 조항이 포함됐다. 이 의원 법안은 피해자와 가해자로 지목된 자가 함께 입증해야 한다. 장 의원 법안은 차별 행위가 있었다고 주장하는 자의 ‘상대방(가해자)’이 전부 ‘증명’하도록 했다.
이런 내용이 법안에 반영된 것은 차별당한 사람을 무조건적인 피해자로 보는 시각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차별의 피해 당사자가 차별을 입증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증명책임의 원칙은 남녀고용평등법에 이미 명시돼 있고, 의료·환경 분쟁의 판례에서도 도입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민사 소송에서 불법행위의 입증 책임을 원고에 지우는 법의 일반원칙에 반한다고 지적했다. 국가인권위원회 비상임위원을 지낸 이은경 법무법인 산지 대표변호사는 “가해 행위와 위법성, 고의, 과실 등은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한 자가 하는 게 기본 원칙”이라며 “입증책임을 전환한 것은 법 체계의 근간을 흔드는 입법행위”라고 비판했다.
경제계에서는 과도한 소송에 휘말릴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인사와 성과급, 고용 및 해고에 불만을 품은 직원들이 국적, 학력, 출신 지역, 성적 지향(동성애) 등을 핑계로 대며 차별받았다고 주장할 경우 속수무책이기 때문이다.
경남지역의 한 영세 제조업체 사장 A씨는 최근 자주 결근하는 한 외국인 근로자를 엄하게 꾸짖었다가 이 지역 시민단체로부터 “외국인을 차별하는 악덕 사업주”라는 항의를 받았다. 차별금지법에 따르면 A씨가 소송을 당하면 ‘차별하지 않았다’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 A씨는 “한 외국인 직원이 자주 결근해서 잔소리를 한 것일 뿐 특별히 차별한 것도 아니고 오히려 함께 일하는 국내 직원보다 급여를 더 줬다”며 “차별금지법이 시행된다고 하는데, 외국인 근로자에게 의존해야 하는 뿌리기업들은 걱정이 앞선다”고 말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검토보고서에도 이런 문제점이 지적됐다. 검토보고서는 “우리 민사소송 체계하에서는 도입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며 “입증책임의 배분을 일률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충분한 검토가 필요해 보인다”고 밝혔다.
조미현/안대규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