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 패션부문이 20년간 운영해온 국내 유일의 패션리서치 사이트인 ‘삼성디자인넷’을 폐쇄했다. 사업영역에서도 ‘빈폴’ 등 독립 브랜드 육성보다 MZ세대(밀레니얼+Z세대)를 겨냥한 해외 신명품 발굴로 방향을 틀고 있다. 국내 패션업계의 ‘맏형’격인 삼성물산 패션부문이 코로나19 이후 불어닥친 불황 타개를 위해 명분보다 실리를 좇는 방향으로 급선회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내 유일 리서치기능 폐쇄삼성물산 패션부문은 “삼성디자인넷의 온라인 서비스를 지난 4월 30일자로 종료했다”고 21일 밝혔다.
2001년 연 삼성디자인넷은 삼성패션연구소가 국내외 패션 콘텐츠를 제공해왔다. 각종 국내외 패션 정보가 한데 모인 ‘리서치 센터’ 역할을 해오던 사이트다. 패션 트렌드 정보, 마케팅 정보, 각종 뉴스 및 리포트 등 텍스트 자료 7만 건이 저장돼 있고, 이미지 자료 50만 건, 리서치 데이터 8만 건의 방대한 자료를 확보하고 있다. 등급별로 차별화된 콘텐츠를 이용할 수 있어 주로 패션업계 종사자가 자료 검색을 위해 애용해왔다. 코로나19로 인한 패션업계의 위기 상황과 전략을 검색하면 이탈리아에서 열리는 최대 남성복 박람회 ‘이태리 피티워모’의 최신 리포트를 열람할 수 있었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세계 패션 정보를 한눈에 볼 수 있어 패션 종사자들이 자주 사용하던 사이트”라며 “패션 종사자 대다수가 이용해왔다”고 말했다.
뷰티·패션 저널 WWD 등 해외사이트의 등장으로 이용빈도가 이전만 못했지만 업계에서는 전면 폐쇄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다는 반응이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지금까지는 리포트와 정보를 외부로 공유하는 게 목적이었다면 이제 내부 사업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방향을 바꾼 것”이라고 설명했다.
패션업계에서는 내부 경영효율화의 일환으로 보고 있다. 삼성패션은 지난해 말 코로나19로 인한 경영 악화로 무급휴직을 시행했다. 패션 인력도 지난해 1분기 1520명에서 1년 사이 1333명으로 줄었다. 부쩍 늘어난 해외명품 브랜드 비중
삼성물산 패션부문은 온라인 패션몰 SSF숍 운영과 함께 꼼데가르송, 비이커, 톰브라운, 아미(사진) 등 MZ세대의 ‘신명품’ 키우기에 주력하고 있다. 이에 힘입어 영업이익은 지난 1분기 210억원을 기록하며 1년 만에 영업손실에서 탈출했다. 아미 등의 신명품 브랜드는 올 1~5월 전년 대비 358% 신장하면서 성장세를 견인했다. 지난 15일에는 프랑스 브랜드 ‘후즈’를 선보이는 등 신명품 키우기에 공을 들이고 있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은 2010년대 들어 해외 명품브랜드를 집중 육성하고 있다. 톰브라운과 아미는 2011년, 메종키츠네는 2012년 들여왔다. ‘크루아상 백’으로 유명한 르메르는 2013년 사업을 시행했다. 당시 패션부문 사장을 맡았던 이서현 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이 씨앗을 뿌린 해외 브랜드들이 코로나19로 인한 경영위기에서 뜻밖의 효자가 되고 있는 셈이다. 이 이사장이 들여온 메종키츠네, 아미 등은 서울 한남동 명품거리를 형성하고 있다. 삼성의 자체 브랜드 빈폴의 성장이 둔화된 와중에 해외 명품브랜드 비중은 전체 매출의 40%에 육박할 정도로 급증했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이 이사장이 해외 유명 브랜드를 들여오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건 사실”이라며 “이건희 회장 사망 후 두 자녀가 법정 상속 비율대로 지분을 받으면서 삼성 내 역할이 커질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배정철 기자 b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