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지수가 3000선에 안착한 이후 투자자들은 주가가 한 단계 ‘레벨업’할 이벤트를 찾기 시작했다. 유동성은 더 이상 불어나면 위험할 만큼 증시로 쏟아져 들어왔고, 기업 이익은 늘어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 이벤트 중 하나가 ‘선진국지수’ 편입이다. 외국인 자금 유입이 늘어날 뿐만 아니라 높은 밸류에이션을 부여받으면 주가가 더 오르는 것을 정당화할 수 있어서다.
하지만 올해도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은 한국의 관찰대상국 지위를 회복시켜주지 않았다. 그동안 지적했던 외환시장 규제 등에 더해 한국의 공매도 규제까지 문제 삼았다.
재계와 증권업계에서는 글로벌 지수를 따라 투자하는 자금이 급격히 늘고 있고, 신흥국지수 내 중국의 부상 등을 고려하면 MSCI 선진국지수 편입이 시급하다는 의견이 많다. 이대로 가면 지난해부터 이어진 외국인 매도세가 계속될 것이란 우려도 있다.
악화된 평가21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MSCI는 지수 편입 여부를 심사하고자 1년에 한 번 여는 정례회의에서 한국의 신흥국지수 잔류를 결정했다. 기존과 마찬가지로 역외 외환시장이 없다는 점, 영문 공시 자료가 부족해 기업 정보에 접근하기 어렵다는 점, 배당금이 배당락일 이후에 결정된다는 점, 외국인 투자자 등록 절차가 복잡하다는 점 등이 문제로 제기됐다.
지난해 평가와는 두 가지가 달라졌다. 통신업종 내 외국인 지분 제한(49%)의 완화 가능성은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국회에 지분 제한을 완화하는 법안이 발의돼 있다.
하지만 공매도 규제 문제가 새롭게 제기됐다. MSCI는 “코스피200과 코스닥150지수에 편입되지 않은 종목에 대한 공매도 재개 계획이 없다”고 지적했다. ‘시장 인프라’ 항목 내 공매도 점수를 ‘문제 없음’에서 ‘일부 문제, 개선 가능’으로 부여했다. 시장 인프라 부문은 한국이 선진국지수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시장 접근성 기준’에 하위 항목이다. 사실상 평가가 악화됐다.
여기에 기업이 배당금을 배당락일 이후 결정해 배당수익을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도 문제 삼았다. 이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는다는 게 MSCI의 주장이다. 주주환원책을 강조하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환경에서는 부정적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문제는 역외 외환시장한국 정부가 그동안 MSCI의 문제 제기에 소극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역외 외환(현물)시장을 놓고 의견차가 좁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외환위기를 겪었던 트라우마가 있어 외환시장에 상대적으로 더 민감한 편이다. MSCI 요구를 받아들여 역외 현물시장을 개설하면 환율 급변동에 개입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업계 관계자는 “‘외환시장 개입’과 ‘선진국지수 편입’ 가운데 정부는 전자를 택하는 분위기여서 MSCI 지수 편입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측은 이와 관련해 MSCI에 지난 5월 서신을 보내 “활성화된 역내 외환시장과 역외 차액결제선물환(NDF)시장이 있는 만큼 외국인 투자자가 원화를 거래하는 데 불편함이 없다”는 논리를 폈다. 통화조합별 거래 규모를 보더라도 달러·원 거래가 10번째로 많은 만큼 역외 외환시장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취지다.
이에 대해 MSCI 태도는 강경하다. 선진국지수에 편입한 23개국 모두 역외 외환(현물)시장이 있다며 한국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달라진 시장 환경문제는 시간이 한국에 불리하게 흘러가고 있다는 점이다. 시장 환경이 변하면서 신흥국지수에 머물러 있는 것 자체로도 수급상 악재가 될 수 있다. 한국 정부가 MSCI 선진국지수 편입 전 단계인 관찰대상국에서 탈락한 2014년 MSCI를 추종하는 세계 펀드자금은 3조5000억달러였다. 지난해 말 이는 14조5000억달러(약 1경6453조1500억원)까지 늘었다. 지수를 추종하는 각국 연기금 규모가 커지면서 추세적으로 늘고 있다. 김동영 삼성증권 연구원은 “패시브 투자 자금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신흥국지수에 머물면 외국인의 매도세가 계속될 수 있다”며 “선진국 증시가 받는 높은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수준)은 한국 증시도 당연히 받아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고윤상 기자 k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