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과 검찰이 모여있는 서초동. 한국 법조계의 심장부다. 이곳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마리오네뜨 인형들이 움직이고 있다는 얘기를 곳곳에서 들을 수 있었다. 그것도 어렵지 않게 말이다. 심지어 조직의 말단 구성원이 아닌 수장들에 대한 내용이었다.
검찰에서 이달 초 고위 간부급 인사를 단행했다. 이때 기존 서울중앙지검장은 고검장으로 승진했다. 임명된 지 불과 4개월 정도 밖에 안 된 법무부 검찰국장이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에 앞서 검찰총장도 임명됐다.
몇몇 법조인들에게 이들에 대해 물었다. 대검과 담 하나 사이에 둔 대법원 수장에 대해서도 함께 물어봤다. 사법연수원 동기, 함께 검찰에 근무했던 사람, 대학 동기 등이었다. 놀라울 정도로 공통점이 많았다.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었다. △약한 존재감 △결단력 부재 △상급자 눈치보기 등이었다.
“작년 1월 중앙지검장에 임명됐다는 소식을 듣고 첫 반응이 ‘누구지?’ 였어요. 일반적으로 중앙지검장 정도면 ‘000가 될 가능성 있다’는 소문이 돌거든요. 거기서도 전혀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뜻밖의 인물이었죠. 실력이 좋으면 당연히 알려졌을 텐데 누군지 잘 모르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현직 검사
“검찰에서 함께 근무했습니다. 두루 다 잘 알죠. 좋은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검사로서 적격자이냐는 기준에서는 의문이 듭니다. 검사로서 결단을 내려야 할 때가 있습니다. 상급자로 올라갈수록 결단의 시간은 더 자주 찾아오죠. 책임지고 방향을 설정하고 밀고 나가야 합니다. 결과에 대해선 책임을 져야 그게 리더죠. 그들에게선 이런 점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늘 결정을 미루고 상급자만 쳐다보죠. 상급자가 하라는 대로 하는 겁니다. 결정을 미루면 누가 가장 괴로울까요? 바로 아래 부하들입니다.” -검찰 출신 변호사
“사법연수원 동기입니다. 연수원에 있을 때 전혀 존재감이 없었어요. 실력이 뛰어났다면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었겠죠. 자기 주장이나 철학도 찾아보기 힘들었고요. 그런 사람이 이렇게 높은 자리까지 올라갔다는 사실에 대해 그를 아는 사람은 모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 국내 대형 로펌 변호사
물론 개개인의 주관이 개입됐을 수 있으니 전부를 믿어선 안 된다. 가려들어야 한다. 하지만 복수의 관계자로부터 비슷한 의견을 들었으니 배제할 수도 없었다. 작은 기업이나 동네 가게 사장님이 아니다. 검찰과 법원 조직을 이끄는 수장들이다. 많은 이들이 그 자리에 앉은 이들에게 공명정대함, 결단력, 추진력, 책임감, 정의감 등을 기대할 것이다. 그래야만 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물에 물 탄 듯한 인물에겐 어울리지 않는 자리, 입을 수 없는 옷이다
마리오네뜨는 인형을 실에 매달아 움직이는 인형극을 말한다. 작은 무대 상부에서 사람이 인형을 조작한다. 영혼 없는 인형은 사람이 시키는 대로 움직인다. 무대에선 살아 움직이지만 속은 텅 비어있다. 사람이 조작하지 않을 땐 가만히 누워 있다. 시키는 자의 메시지가 없으니 마냥 뭉개고 있는 것이다. (혹은 윗선에서 ‘뭉개고 있으라’는 암묵적 지시를 받고 이를 수행 중일지도 모른다.) 열심히 수사해 기소 의견을 전달한 부하 직원 입장에선 복창이 터질 노릇이다. 정권 수사를 뭉개‘뭉개다’의 뜻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봤다. ‘일을 어떻게 할 줄 모르고 미적미적하거나 우물우물하다.’ 수사기관의 수장들, 판사들을 향해 사용할 단어가 아니다. 최근 들어 이 단어가 자주 등장하고 있는 건 분명 그럴 법 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정권 관련 이용구 전 차관 폭행과 청와대 기획사정 의혹, 검언유착 사건 등이 서울중앙지검에 줄줄이 계류 중인 것이 대표적이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올해 초 법원 정기인사에서 4번째 유입됐다. ‘서울중앙지법 재임 3년’ 관례를 깬 인사였다. 그 부장판사는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 재판을 담당하면서 공판 준비 기일로만 1년 3개월을 보냈다. 대표적인 ‘뭉개기’ 사례다. 이에 한 현직 부장판사는 “납득하기 힘든,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끝내 이 사건에 대한 판결을 내리는 당사자가 되고 싶지 않았던 것일까. 그 부장판사는 지난 4월 병가를 내고 돌연 휴직에 들어갔다. 이런 인사를 한 인물은 최근 공관에서 한 대기업 법무팀을 초청해 만찬을 가졌던 일로 시끄럽다. 그전에는 ‘거짓말 파문’으로 여론과 정치권으로부터 사퇴 압박을 받기도 했다. 누군가 “한국 사회는 공사(公私) 구분도 제대로 못하는 인물을 3부 요인으로 두고 있다”고 지적한다면 어떻게 반박할 수 있을까.
법조계 관계자들의 전언이 맞다면, 법원과 검찰의 핵심 요직은 정권의 의중을 충실하게 따르는 자들로 채워졌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스스로 판단해 결단을 내려본 적이 없으니 큰 칼을 손에 쥐여줘도 휘두르는 법을 모른다. 그저 윗분의 지침만을 기다릴 뿐이다. 최근 인사를 통해 이런 분위기는 더 짙어진 듯 하다.
곧 검찰 직제개편과 함께 중간간부 인사가 단행될 전망이다. 방향과 분위기는 아마도 고위 간부 때와 비슷할 것이다. ‘조국 사태’와 ‘추-윤 갈등’으로 큰 내상을 입은 정권은 더욱 철저하게 확실한 마리오네뜨를 구성하려 할 것이다. 아마도 서초동에서 크고 작은 마리오네뜨를 더욱 자주 목격하게 될 수도 있다. “지나치게 노골적이다”는 지적에도 아랑곳 하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간과하는 게 있다. 법원과 검찰에 대한 대중들의 신뢰다. 범죄가 있는 곳이면 성역없이 수사하고 처벌하는 ‘업의 본질’을 중시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의 규모는 결코 적지 않다. 충분히 두려워해야 한다. 국민은 마리오네뜨가 아니다.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