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충북 음성 레인보우힐스CC 18번홀(파4). 박민지(23)의 두 번째 샷이 하늘로 솟더니 핀 방향을 향해 날아갔다. 이 홀은 그린 앞에 해저드가 도사리고 있어 안전한 공략이 중요하다. 박현경(21)과 동타인 상황에서 실수는 곧 패배로 연결되는 순간이었다. 결과는 1m 거리 버디 찬스. 이를 넣은 뒤 우승을 확정한 박민지는 “18번홀 세컨드 샷은 사실 미스 샷이었다”며 “핀 우측을 보고 샷을 했는데 본 것보다 훨씬 더 왼쪽으로 향했다. 핀을 봤다면 해저드에 빠졌을 것이다. 운이 좋았다”고 말했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박민지가 ‘행운의 샷’을 등에 업고 메이저 타이틀을 들어 올렸다. 박민지는 이날 열린 국내 여자골프 메이저대회 DB그룹 제35회 한국여자오픈에서 최종 합계 17언더파 271타를 기록해 2위 박현경(15언더파)을 2타 차로 따돌리고 정상에 올랐다. 개인 첫 메이저 타이틀이자 투어 통산 아홉 번째 우승. 우승상금은 3억원이다.
이로써 박민지는 올해 출전한 9개 대회에서 무려 5승을 휩쓸었다. 우승 확률이 55.6%에 달한다. 그중 4승은 최근 5주 사이에 나왔다. 아직 시즌이 반환점을 돌지 않은 상황에서 상금랭킹에서도 9억4804만원으로 압도적 1위를 달리고 있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사상 단일 시즌 최다상금 기록인 박성현(2016년)의 13억3309만원을 넘어서는 것도 시간 문제로 보인다. 대상 포인트도 70점을 더해 1위(333점)를 굳건히 했다.
시즌 5승은 KLPGA투어 사상 한 시즌 최다승 순위에서 공동 4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이 부문 1위는 신지애(33)가 2007년 기록한 9승이다.
15언더파로 최종 라운드를 시작한 박민지는 14언더파의 박현경과 사실상 1 대 1 경기를 펼쳤다. 8언더파로 3위에 있던 이정민(29)과의 격차가 워낙 컸기 때문이다. 초반은 불안했다. 박민지는 3번홀(파3), 4번홀(파4)에서 연속 보기를 범했고 5번홀(파4)에선 버디를 낚아챈 박현경에게 2타 차로 역전을 허용했다. 하지만 6번홀(파3)부터 3연속 버디를 잡았고 박현경에게 내준 리드를 되찾아왔다.
박현경이 11번홀(파3)에서 버디를 낚아채 다시 공동 선두가 되면서 막판까지 안갯속 승부가 펼쳐졌다. 박민지는 15번홀(파4)에서 버디를 잡아 단독 선두로 올라왔다가 다시 16번홀(파5)에서 짧은 파 퍼트를 놓쳐 공동 선두를 허용했다.
승부는 18번홀(파4)에서 갈렸다. 먼저 티샷을 한 박현경의 드라이버 샷이 왼쪽으로 감기면서 러프 속에 숨었다. 박민지의 샷은 살짝 우측으로 빗나갔지만 러프를 맞고 페어웨이에 공이 들어오는 ‘행운의 샷’으로 연결됐다. 박현경이 레이업을 선택해 3온에 가까스로 성공하는 동안 박민지는 두 번째 샷을 홀 약 1m 앞에 떨궈 우승을 확정했다. 박민지는 “시즌 최다승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상반기에 1승을 더 하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주 셀트리온 퀸즈 마스터스에 이어 2주 연속 박민지와 우승 경쟁을 한 박현경은 뒷심 부족으로 또 한 번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준우승 상금 1억2000만원을 챙긴 그는 누적 상금 4억6404만원을 기록해 이 부문 2위로 올라섰다.
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