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차전지. 한 때 한국의 미래 먹거리 산업으로 꼽혔던 분야입니다. 하지만 주식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과거에 비해 관심이 떨어진 모습입니다. 한때 ‘백만화학’이라고 불리며 코스피 시가총액 3위를 차지하고 있던 배터리 대장주 LG화학은 카카오와 네이버(NAVER)에 밀려 지금은 6위로 주저앉았습니다.
투자자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기 전, 이차전지 업종의 주가를 밀어 올린 건 전기차의 확산이었습니다. 몇 년 전부터 유럽 국가를 시작으로 온실가스 배출을 줄인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내연기관차를 퇴출시키는 법안을 만들기 시작했죠. 일찍부터 중대형 배터리 분야의 연구·개발(R&D)에 나섰던 우리 기업들의 성과 도출이 앞당겨지는 계기가 됐습니다.
여기에 미국 전기차 기업 테슬라가 애플에 버금가는 혁신기업으로 꼽히면서 전기차 산업에 대한 기대감이 더욱 부풀었습니다. 작년과 올해 초까지 우리 배터리 관련 기업들의 주가가 테슬라의 주가에 연동돼 움직이던 게 기억날 겁니다. 나아가 LG에너지솔루션(옛 LG화학 전지사업본부)이 테슬라의 중국 공장에서 생산되는 고급 모델에 들어갈 배터리를 공급하기로 하면서 투자자들은 열광했죠.
미국 증시에서 가장 뜨거웠던 테슬라도 최고경영자(CEO)인 일론 머스크가 가상자산과 관련한 기행을 벌이면서 주가가 지지부진해졌으니, 테슬라와 우리 배터리기업들의 주가가 연동돼 있다는 말이 아직도 유효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국내 배터리 빅3 주가, 고점 대비 10~20%↓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18일 기준 LG화학은 83만5000원에 마감됐습니다. 올해 2월5일 기록한 종가기준 고점 102만8000원과 비교하면 18.77% 하락한 수준입니다. 증권가에서 나오는 ‘LG에너지솔루션이 상장되면 지주사 할인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반영됐기 때문일까요. 전체 사업에서 배터리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이 더 큰 삼성SDI도 다르지 않습니다. 지난 18일 종가도 65만원으로, 올해 2월17일 기록한 고점 80만5000원보다 19.25% 빠졌습니다. 후발주자인 SK이노베이션의 지난 18일 종가가 28만1500원으로 고점인 2월2일의 31만7500원 대비 11.34% 하락해 그나마 가장 덜 떨어졌군요.
최근에 배터리 기업 주식에 투자한 분이라면 계좌를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플 수 있지만, 이 회사들 주가는 최근 1년반 사이 무섭게 치솟았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증시에 영향을 주기 전인 2019년 종가와 비교하면 LG화학은 162.99%가, 삼성SDI는 175.42%가, SK이노베이션은 87.67%가 각각 올랐죠.
증권업계는 최근 배터리기업들의 주가가 지지부진한 이유로 ▲완성차 업체들의 배터리 내재화 시도 ▲중국 배터리 업체들의 약진 ▲차량용 반도체 생산 차질로 인한 신차 출하 지연 등을 꼽습니다. 이중 차량용 반도체 공급 차질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문제이니 넘어가고, 완성차 업체들의 배터리 내재화 우려와 중국 기업들의 약진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글로벌 전기차배터리 1등은 LG엔솔이냐, CATL이냐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1~4월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사용량이 LG에너지솔루션은 14.2기가와트시(GWh), 중국 CATL은 21.4GWh로 각각 집계됐습니다. 점유율로는 CATL이 32.5%로 1위를 차지했고, LG에너지솔루션이 21.5%로 뒤를 이었습니다. 점유율 격차가 11%포인트에 달합니다. 작년 같은 기간에는 LG에너지솔루션이 2.1%포인트 앞섰는데 말이죠.
여기에는 함정이 있습니다. 중국 내 배터리 사용량이 포함된 수치라는 거죠.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큰 전기차 시장입니다. 중국 정부가 어마어마한 보조금을 뿌리며 전기차 산업을 지원했거든요. 어느 정도였냐면, 겉보기에만 그럴싸한 전기차를 만들어 출고해 보조금을 받아낸 뒤 돈 될 만한 부품을 팔아 차고에는 바퀴 없는 자동차 껍데기만 있는 집이 여럿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했습니다.
중국 정부 입장에서는 그렇게 뿌리는 보조금의 혜택을 외국 기업만 차지하는 게 못마땅했겠죠. 외국 기업의 배터리를 탑재한 차종은 보조금 지급 대상에 의도적으로 넣지 않는 차별을 가합니다. 자국 기업들의 기술력이 향상될 때까지 보호해준 겁니다. 정부의 보호 속에 기술력을 키운 CATL은 이제 글로벌 완성차 업체의 배터리 공급업체 선정 경쟁에서 한국 배터리업체들과 경쟁해 한 자리를 차지하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기술력에 있어서 한국 배터리기업들이 중국 기업에 비해 몇 수 위라는 데는 이견이 없습니다. SNE리서치가 ‘기울어진 운동장’인 중국을 제외한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사용량을 집계한 자료를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올해 1~4월 사용된 전기차배터리의 34.9%(12.6GWh)는 LG에너지솔루션이 만든 제품이었습니다. 이 집계에선 CATL이 10.1%(3.6GWh)의 점유율로, 삼성SDI(10.2%·3.7GWh·3위)보다도 아래인 4위에 랭크돼 있습니다. 2위는 일본의 파나소닉(27.1%·9.7GWh)입니다.
K-배터리, 테슬라 업고 1등하던 파나소닉 어떻게 잡았나파나소닉은 과거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사용량 부문에서 압도적 1위였습니다. 테슬라에 독점적으로 배터리를 공급하면서였죠. 하지만 내연기관차만 팔던 완성차업체들이 전기차 모델을 내놓기 시작하면서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테슬라 전기차에 들어가는 배터리는 원통형배터리입니다. 이 배터리는 편의점에서 파는 건전지처럼 생겼는데, 지름이 21mm에 길이가 70mm이니 크기는 좀 더 큽니다. 원통형배터리는 리튬이온전지 중에서는 가장 오래된 형태에요. 안전성이 높고, 만드는 데 비용이 저렴하다는 장점이 있죠.
문제는 배터리 1개 셀(배터리의 4대 부품이 모두 있는 기본 단위)당 크기가 너무 작다보니 자동차를 굴릴 정도의 힘을 내려면 배터리를 많이 연결시켜야 한다는 겁니다. 건전지들을 연결시키는 게 뭐 어렵냐고 물으실 수 있지만, 간단치 않습니다. 각 배터리 셀에서 나오는 전기의 힘을 잘 관리해 한 데 모아야 하는데, 테슬라 전기차 한 대에 들어가는 원통형배터리 셀의 수가 7000개에 이르기도 합니다. 테슬라 전기차의 구동 부분에서 가장 핵심적인 기술이 이 수천개의 배터리 셀을 관리해주는 배터리관리시스템(BMS)입니다. 테슬라는 전기차 산업을 확대시키겠다는 목표로 BMS 관련 특허를 모두 공개했고, 이에 전기차 스타트업들은 원통형배터리를 이용한 전기차 개발을 많이 시도합니다.
우리 배터리기업들도 원통형배터리를 만들기는 합니다. LG에너지솔루션은 테슬라의 중국 공장에서 생산되는 모델Y의 롱레인지 모델에 들어가는 원통형배터리를 공급하고 있습니다. 삼성SDI는 전동공구 등에 원통형배터리를 적용하는 방식으로 수요를 개발해 전기차에 들어가는 걸 제외한 시장에는 가장 많은 원통형배터리를 공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 배터리기업들의 전기차용 주력 제품은 원통형배터리보다는 크기가 큰 파우치형(LG에너지솔루션·SK이노베이션)과 각형(삼성SDI)입니다. 글로벌 완성차업체들도 전기차를 만들 때 파우치형이나 각형 배터리를 채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원통형배터리를 주력으로 만들어 공급처가 테슬라의 국한돼 있는 파나소닉의 점유율이 감소한 이유입니다.
왜 완성차업체들은 파우치·각형 배터리를 채택할까요. 배터리 셀의 크기가 더 커지면 같은 공간에 전기를 저장하는 배터리 핵심 부품들을 더 많이 넣을 수 있습니다. 과자로 치면 개별포장돼 박스에 담긴 초코파이와 벽돌 모양의 내용물을 빈 공간 없이 포장지가 감싸고 있는 웨하스를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배터리는 껍데기가 비닐이 아닌 금속이니 중대형 셀로 구성된 전기차배터리들이 무게도 더 가벼워 연비에도 유리하겠지요. 테슬라도 예전엔 지름 16mm에 길이 65mm인 원통형 배터리를 사용하다가 현재의 크기로 키웠고, 얼마 전에는 지름 46mm에 길이 80mm인 원통형배터리를 전기차에 적용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배터리 셀 크기를 무작정 키우는 게 어려우니 테슬라도 순차적으로 늘려가겠죠. 크기가 커질수록 안전성도 떨어집니다. 배터리의 에너지밀도를 결정하는 게 양극재의 니켈 함량인데, 니켈은 불안정한 금속이라, 배터리 셀의 크기가 커질수록 니켈 함량을 마냥 높이기는 어렵다고 합니다. 배터리업체들은 니켈 함량을 얼마나 더 높였느냐를 근거로 자사의 기술력이 뛰어나다고 주장합니다. 과거 파우치형·각형 배터리 양극재의 니켈 함량의 한계가 60% 수준이었을 때, 니켈 함량이 다른 배터리 셀들을 섞어 세트(배터리 팩)를 구성한 뒤 니켈 함량 80%를 달성했다고 홍보했다가 논란을 만든 국내 배터리업체도 있었죠.
완성차업체 배터리 내재화, 현실성 있나현대차를 포함해 배터리를 구매해야 하는 완성차 업체들 사이에서는 배터리 내재화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나옵니다. 우리 증시의 이차전지 업종에 가장 큰 충격을 준 건 '폭스바겐'이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자동차를 출하하는 폭스바겐그룹은 지난 3월15일 개최한 파워데이 행사에서 2023년부터 신규 각형배터리를 전기차에 적용하고, 2030년까지 이 배터리 적용 비율을 80%까지 높이며, 궁극적으로는 배터리 내재화를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스웨덴에 있는 배터리 스타트업 노스볼트에 지분 투자를 해 최대주주로 올라서는 액션(?)을 보여주기도 했죠. 이에 파우치형을 주력으로 만드는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이 가장 큰 구매사를 잃게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기도 했습니다.
완성차업체들이 기존 배터리업체들을 배제하고 단독으로 배터리 내재화를 실현하기는 힘들다는 게 업계의 중론입니다. 배터리 내재화를 추진하는 가장 큰 이유가 비용 절감일 텐데, 양산 체제를 갖추는 게 어려울 뿐더러 자칫 자체 생산한 배터리에서 화재라도 발생하면 더 큰 비용이 들기 때문입니다.
비용을 절감시킬 만한 배터리 양산체계를 구축하는 것부터 돈만 많이 투자한다고 단기간에 이뤄지지 않습니다. 먼저 배터리 양산 체제를 구축한 기업들을 보면 알 수 있죠. LG화학이 전기차 배터리 사업에 본격적으로 나선 건 2009년 GM과 협력관계를 맺으면서인데, 아직도 전기차 배터리 부문은 적자입니다. 전기차 배터리 부문이 흑자냐 적자냐를 따지게 된 것도 오래 되지 않았습니다.
LG에너지솔루션이 분사하기 전 LG화학은 캐시카우인 석유화학 부문에서 벌어들인 돈을 배터리 분야에 쏟아 부어 기술을 개발하고 양산체제를 구축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적자 사업부인 전지사업본부 직원들이 처우에 대한 불만으로 경쟁사로 이직했고, 이는 얼마 전 합의금 2조원에 마무리된 ‘세기의 영업비밀 침해 소송’으로 이어졌습니다.
힘들게 전기차 배터리 사업을 키워온 LG에너지솔루션도 배터리 화재 문제로 여러 차례 홍역을 치렀습니다. 특히 올해 초 현대차의 코나EV 차량에서 잇따라 화재가 발생하면서 1조원 넘는 비용이 들어가는 리콜이 결정됐고, LG에너지솔루션은 리콜 비용의 70%를 부담하기로 한 바 있습니다. 최근에는 약 4000억원의 비용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는 에너지저장장치(ESS) 배터리 리콜을 결정하기도 했죠.
각국 정부의 ‘전기차 전환’ 재촉배터리 내재화가 어렵다는 걸 모를리 없는 폭스바겐은 왜 스타트업인 노스볼트의 지분까지 인수하는 액션까지 보이며 배터리기업들을 압박했을까요. 증권업계는 배터리 가격 협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는 추측에 힘을 싣습니다. 완성차 업체들이 느긋하게 전기차 전환을 추진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거든요.
완성차 업체들이 급한 이유는 환경 규제입니다. 기업을 불편하게 하거나 비용을 늘리는 수준의 규제가 아니라 완성차 업체들이 100년 넘게 만들어온 내연기관차를 시장에서 퇴출시킬 예정입니다. 노르웨이는 4년 뒤인 2025년부터 내연기관차 판매를 금지합니다. 내연기관차 퇴출 시점을 2035년으로 잡았던 영국은 최근 이 시점을 2030년으로 앞당겼어요. 한국 역시 국가기후환경회의에서 2035년 이후 내연기관차 판매를 중단시킬 것을 공식적으로 건의한 상태입니다. 중국과 일본도 비슷한 시기에 내연기관차를 퇴출시킬 예정이고요.
아직 완성차업체들은 전기차를 팔아서 큰 이익을 남기지는 못한다고 합니다. 친환경차 판매 실적에 따라 불이익 없이 팔 수 있는 내연기관차의 양이 정해지는 탄소배출 쿼터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전기차를 만들어 파는 겁니다.
현재 전기차 가격에서 배터리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40% 수준으로 알려졌습니다. 수익성 측면에서 내연기관차와 경쟁이 되려면 배터리 가격이 떨어져야 합니다. 배터리 기업들도 잇따라 대규모 공장 설립·증설에 나서 규모의 경제 효과로 배터리 단가를 낮추려 노력하는 중입니다.
완성차업체들도 배터리 가격을 내리라고 갑질만 하는 건 아닙니다. 그들도 스케이드보드 형태의 전기차 전용 플랫폼을 만드는 등 비용 절감에 나서고 있습니다. 전기차 전용플랫폼을 만들어 두면 그 위에 얹을 차체만 바꾸는 방식으로 여러 차종을 만들어 낼 수 있어 개발비를 아끼게 되거든요. 혼자서 할 수 없는 배터리 내재화는 배터리업체와 합작을 통해 추진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GM과 LG에너지솔루션이, 포드와 SK이노베이션이 각각 합작해 배터리 공장을 지을 계획입니다. 중국 배제된 미국서 ‘아메리카 드림’ 이뤄질까많이 돌아왔습니다. 이제 이차전지 업종의 분위기를 반전시킬 미국 시장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해보겠습니다. 분위기 반전의 땅으로 미국을 꼽은 건 전기차 산업의 성장 여력이 가장 많이 남았다는 점 때문입니다. 배경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죠. 그는 지구온난화가 허구라고 주장하며 친환경 산업에 대한 지원에 인색했습니다.
올해 초 취임한 조 바이든 대통령의 입장은 트럼프 전 대통령과 정반대입니다. 바이든 행정부가 지난 3월 내놓은 2조2500억달러 규모의 인프라투자 계획에는 전기차 산업에 1740억달러를 지원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 기업들 입장에서는 미국 시장은 중국 기업들의 저가 공세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곳입니다. 미·중 관계가 여전히 나쁘기 때문입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달 18일 포드의 전기차 공장을 방문해 “전기차 경쟁에서 중국이 이기도록 놔두지 않겠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백악관이 지난 8일(현지시간) 공개한 4대 핵심분야(반도체·배터리·의약품·희토류)에 대한 공급망 차질 대응 전략 보고서의 배터리 부분에도 중국을 견제하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김현수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이 보고서가) 배터리 산업에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미드스트림(중간재 분야)을 장악하고 있는 중국을 견제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한국 배터리 서플라이 체인 입장에서는 미국 전기차 시장에 중국 경쟁사의 침투가 제한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차 전지가 또한번 도약하기 위해서는 미국땅에서의 '아메리카 드림'이 필수적인 이유입니다.
한경우 한경닷컴 기자 ca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