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채권시장에 반영된 기대 인플레이션율이 하락하고 있다. 시장 참가자들이 “최근의 급격한 물가 상승은 일시적일 것”이란 전망에 무게를 실어주고 있는 것이다.
10년 만기 국고채 기준 손익분기 인플레이션율(BEI)은 지난 14일 1.254%를 기록했다. 채권시장 참가자들이 예상하는 앞으로 10년 동안의 평균 인플레이션율이 연 1.254%라는 뜻이다. 10년 만기 국고채와 물가연동국고채의 금리 차이로 계산한다.
국내 BEI는 코로나19 사태가 한창이던 지난해 5월 0.190%까지 떨어졌다. 디플레이션 공포가 극에 달했던 때였다. 이후 급반등해 올해 5월엔 1.483%로 올랐다. 최근인 6월 2일에도 1.455%까지 올랐지만 그 이후 상승 동력을 잃고 하락세로 방향을 바꿨다.
BEI가 하락하니 인플레이션 우려는 끝난 것으로 봐도 될까? 그 전에 몇 가지를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기대 인플레이션 지표엔 여러 가지가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게 한국은행이 매월 일반인을 대상으로 설문해 집계하는 기대 인플레이션율이다. 지난달 2.2%를 기록했다. 일반 사람들은 앞으로 1년 동안의 인플레이션율을 2.2%로 예상한다는 뜻이다. BEI보다 1%포인트 가까이 더 높다.
일반인의 기대 인플레이션은 임금 인상 요구 등으로 향후 물가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다만 미래의 인플레이션을 예측하는 능력은 현저히 떨어진다. 최근 발표된 물가 상승률 수치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후행적이다. 실제 인플레이션율을 잘 따라가지도 못한다. 2013년 한국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1% 안팍으로 떨어졌다. 저물가가 고착화했다. 그런데도 당시 일반인 기대 인플레이션율은 2% 중후반에 머물렀다.
한국은행은 일반인 인플레이션과 BEI 외에 다른 보조 지표를 함께 본다. 국내 전문가를 대상으로 설문하는 향후 1년간의 기대 인플레이션율이 그중 하나다. 영국 컨센서스 이코노믹스의 향후 1년·5년 기대 인플레이션도 있다. 컨센서스 이코노믹스는 매월 국내외 투자은행, 증권회사, 경제연구소 등의 경제 전문가를 대상으로 전망치를 조사한다.
지난 5월 조사에서 전문가 전망치는 1.7%, 컨세서스 이코노믹스 1년 기대 인플레이션율은 1.6%를 기록했다. 컨세서스 이코노믹스의 5년 평균 기대 인플레이션율은 1.7%였다. 상승 추세이긴 하지만 물가 목표인 2%를 웃도는 ‘오버슈팅’ 가능성은 아직 낮다고 전문가들이 본 것이다.
금융시장 전문가들은 올해 상반기에 유난히 컸던 물가 상승률은 많은 부분이 기저 효과에 의한 것이라고 분석한다. 올해 5월 소비자 물가는 전년 동월보다 2.6% 올랐다. 1년 전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0.3%를 기록한 게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는 설명이다. 마이너스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2019년 9월에 이어 통계 작성 이후 두 번째였다.
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7월 0.3%, 8월에는 0.7%, 9월에는 1.0%를 기록했다. 차츰 기저 효과로 인한 영향은 줄어들 전망이다. “하반기에는 국내 물가가 가파르게 하락할 것”이란 주장(강승원 NH투자증권 연구원)이 나오는 이유다.
인플레이션이 당장 큰 문제가 아니라면 한국은행은 왜 서둘러 금리를 인상하려는 걸까. 부동산 등 자산시장으로의 쏠림이 심하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공동락 대신증권 연구원은 “물가는 올해를 정점으로 내년에 상승세가 둔화할 가능성이 크다”며 “한국은행의 금리 인상 시사는 물가 안정보다는 금융 안정에 방점을 둔 것”이라고 했다.
이렇듯 여러 정황상 인플레이션은 고비를 넘긴 것으로 보인다. 기대 인플레이션 지표 외에도 구리, 철강, 목재, 대두, 옥수수 등 원자재 및 농산물의 가파른 가격 상승세가 한풀 꺾였다. 다만, 백신 보급이나 대규모 인프라 투자, 지정학적 갈등에 따른 공급망 충격 등에 따라 언제든 물가 상승이 빨라질 수 있어 당분간 투자자들의 인플레이션 경계감은 쉽게 풀리지 않을 전망이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이 기사는 06월16일(08:30) 자본시장의 혜안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