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작 망해야 할 사모펀드들이 과열된 공모주 시장을 악용해 엄청난 돈을 벌고 있습니다. 한 주라도 더 받기 위해 공들이고 있는 개인투자자들에겐 허탈감을 줄 수 있는 사안인데 이를 방조하는 분위기입니다.”
사모펀드 업계에서조차 이 같은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제도적 허점을 이용해 일부 사모펀드가 고수익을 챙기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라임, 옵티머스 사태 등 사모펀드 위기 속에서도 지난 1년 새 전문사모운용사가 225개에서 255개로 30개나 늘었다. ‘공모주 대박’을 노린 사모펀드들이 연이어 시장에 뛰어든 영향이다. 한 전문사모운용사 관계자는 “부자들이 신생 사모운용사를 찾아다니며 공모주 펀드를 만들어 달라고 요구하고 이를 통해 고수익을 올리는 건 알 만한 사람은 안다”며 “그 과정에서 여러 편법도 동원됐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공모주 노린 신규 사모펀드 급증17일 현재 사모펀드가 운용하고 있는 공모주 펀드는 총 677개다. 이 가운데 올 들어(4월 말 기준) 새로 설정된 펀드만 191개에 달했다. 공모주로 큰돈을 벌 수 있다는 경험담이 퍼지며 너도나도 공모주 펀드를 만들고 있다는 얘기다. 공모주는 개인으로 청약하기보다 기관으로 수요예측에 참여하면 물량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다. 사모펀드는 시장의 감시를 피하기도 쉽다. 일부 투자자는 이런 제도적 허점을 활용, 사모펀드를 통해 공모주 물량을 가져간 뒤 고수익을 올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5월 설정된 한 코스닥벤처펀드는 1년도 채 안 돼 260%에 달하는 수익을 냈다. 업계에선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수익률이라고 보고 있다. 10억원 규모의 펀드가 36억원까지 불어난 셈이다. 고액 자산가들 사이에서 공모주 펀드가 안정적으로 큰 수익을 낼 수 있는 수단으로 자리잡은 것도 이 때문이다. 올해 공모펀드들이 운용한 공모주 펀드 수익률은 2% 수준이지만 사모펀드들이 운용하는 공모주 펀드는 평균 7%가량의 수익을 냈다.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일반 공모주펀드는 순자산 규모에 따라 공모주를 배정받지만 하이일드 펀드의 경우 이와 무관하게 더 많은 공모주를 받아가 공모펀드가 역차별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적자를 면치 못하던 사모펀드들도 공모주 덕분에 연명하고 있다. 금감원이 집계한 지난해 자산운용사 실적 현황에 따르면 적자를 기록한 전문사모운용사 비율은 24.3%로 2019년에 비해 16.7%포인트 줄었다. 업계 관계자는 “사모펀드 사태에 이어 금융소비자보호법 시행 등으로 펀드 수탁이 점점 어려워지면서 고전하고 있는 사모펀드가 적지 않다”며 “공모주 펀드로 수익을 내 목숨을 이어가고 있는 곳이 많다”고 밝혔다. 어떤 편법 사용했나이들은 다양한 편법을 활용했다. 제도적 허점도 상당했다. 코스닥벤처펀드는 공모주 청약 시 펀드 규모에 따라 일정 비율대로 물량이 배정된다. 순자산 3000억원짜리 펀드가 10억원짜리 펀드보다 많은 물량을 받아야 하는 구조다. 하지만 그간 하이일드 공모주 펀드는 이 같은 기준이 적용되지 않았다. 10억원짜리 펀드라고 하더라도 수천억원을 적어내면 그에 비례해 물량을 받아낼 수 있었다. 10억원 규모의 펀드가 이를 초과하는 공모주 물량을 받을 경우 ‘사고’가 발생하지만 공모주 청약 경쟁이 워낙 치열해진 탓에 일단 ‘지르고 보자’는 심리가 작용했다. 이 때문에 SK바이오팜 상장 당시 2000억원 규모의 공모펀드가 1%대 배정 비율을 적용받은 반면 소규모 사모펀드가 7%에 달하는 배정 비율을 적용받은 사례도 있었다. 한 전문사모운용사 대표는 “공모주 펀드를 운용하고 있지만 매번 어떤 기준으로 배정받는지 의아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며 “증권사 공모주 담당자에게 로비해야 많은 물량을 받을 수 있다는 루머까지 업계에 나돈다”고 말했다.
기업공개(IPO) 수요 예측에 참가해 받은 공모주를 사전 합의를 통해 특정인에게 매도해 차익을 취하는 사례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펀드 명의로 수요예측에 참여했지만 이를 불법으로 넘겨주고 이익을 챙기는 방식이다. 사모펀드의 특성상 투자자들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도 악용되고 있다. 이면계약이나 특정인에게 공모주를 몰아주는 행위가 횡행하는 이유다. “보여주기식 감시론 안돼”심각성을 인지한 당국은 뒤늦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선 지난 1년간 순자산 기준이 아니라 주먹구구식으로 배정됐던 하이일드 공모주 배정 방식을 다음달부터 손질하겠다는 입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그간 펀드 규모에 비례해 공모주가 배정되지 않아 예측이 불가능할 뿐더러 운용능력과 상관없이 공모주가 배정되면서 투자 성과 차이에 대한 피해가 고스란히 선의의 투자자에게 전가되는 상황이었다”고 지적했다.
금감원은 안내문을 발송해 우선 경고 메시지를 전했다. 금감원은 지난 16일 전문사모운용사 대표들에게 ‘공모주 펀드 운용 관련 유의사항 안내’라는 공문을 발송했다.
문서에는 △투자자 운용 요청을 받아 펀드를 운용하지 말 것 △투자중개업 인가를 받지 않은 운용사가 펀드 명의로 공모주 물량을 받고 특정인에게 넘기지 말 것 △여러 공모주 펀드 중 한 펀드로만 공모주 물량을 받아 다른 펀드 수익률을 해치지 말 것 등이 적시됐다. 최근 사모펀드를 통해 편법으로 공모주 물량을 가져가는 투자자가 적지 않은 것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서는 이 정도 수준으로는 불법 청약을 근절하기 어려울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한 업계 관계자는 “공모주가 국민적인 재테크 수단으로 떠오른 만큼 보여주기식 감시가 아니라 증권사의 깜깜이 배정부터 일부 사모펀드 반칙 운용까지 더욱 적극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박재원/고재연/이슬기 기자 wonderf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