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리나 칸 컬럼비아대 로스쿨 교수(32·사진)를 한국의 공정거래위원회 격인 미 연방거래위원회(FTC) 수장으로 내정했다. ‘최연소 빅테크 저격수’로 불리는 칸 교수는 정보기술(IT) 대기업들의 플랫폼 선점 행위를 강도 높게 비판해왔다. 바이든 정부가 IT 기업에 대한 반독점 규제 속도를 더욱 높여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바이든 대통령이 15일(현지시간) 칸 교수를 FTC 위원장에 임명하기로 했다고 외신들이 일제히 보도했다. 1914년 세워진 FTC는 한국의 공정거래위원회 같은 역할을 한다. 기업 독과점과 불공정 거래를 감시한다. 칸 교수가 임명되면 FTC 최연소 위원장이 된다. 임기는 2024년 9월까지다.
FTC가 기업 간 인수합병(M&A) 등에 제동을 걸기 위해선 위원 다섯 명 간 합의가 필요하다. 하지만 위원장은 직권으로 반독점 조사를 지시할 수 있다. 막강한 권한을 손에 쥐는 셈이다. 칸 교수는 트위터를 통해 “불공정하고 기만적인 관행으로부터 소비자, 노동자, 정직한 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FTC가 만들어졌다”며 “임무를 지켜 가겠다”고 했다. 빅테크와의 전쟁을 선포한 것이다.
올해 3월 바이든 대통령은 칸 교수를 FTC 위원으로 지명했다. 그로부터 석 달 뒤 미 상원에서 인준안은 69 대 28로 통과됐다. 공화당 의원까지 찬성표를 던진 초당적 지지였다. 위원장 지명 소식이 전해진 것은 투표 직후다. 통상 백악관은 FTC 위원장을 임명할 때 처음부터 외부인을 지명하거나 기존 위원 중 택하는 방식을 썼다. 경험 없는 외부인이 FTC 위원으로 임명되길 기다렸다가 위원장에 앉히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FTC 위원장을 지낸 윌리엄 코바칙 조지워싱턴대 법대 교수는 “아웃사이더 운동권이 갑자기 FTC 위원장이 된 것”이라고 했다.
칸 교수는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파키스탄계 이민자다. 11세 때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가 이름을 알린 것은 2017년 ‘아마존의 반독점 역설’을 주제로 논문을 발표하면서다. 예일대에 재학하던 그는 IT 기업이 독점적 지배력을 강화하고 있지만 제도가 따라가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물건을 값싸게 판다는 이유로 이들을 규제하지 않으면 결국 소매시장을 잠식해 플랫폼을 독식할 것이라고도 지적했다. 대학 졸업 후 반독점 싱크탱크인 오픈마켓연구소에서 근무했다. 지난해엔 하원 법사위원회 고문으로 일하면서 아마존과 애플, 페이스북, 구글 등을 비판하는 449페이지짜리 보고서 작성에 참여했다. IT 기업이 신생기업을 인수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내용이다. 보고서는 하원이 IT 기업에 대한 규제 패키지 법안을 내놓는 근거가 됐다.
바이든 대통령은 올해 3월 칸 교수의 동료인 팀 우 컬럼비아대 교수를 국가경제위원회 대통령 기술·경쟁정책 특별보좌관에 임명했다. 잇단 인사로 바이든 정부가 기업들의 반독점 행위에 대한 감시를 강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은 FTC가 아마존의 MGM 인수 계약을 재검토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칸 교수의 임명에 대해 IT 기업들은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시민단체와 민주당은 환영의 뜻을 밝혔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