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유럽연합(EU)이 2004년부터 17년에 걸쳐 지속한 미 항공기 제조사 보잉과 유럽의 에어버스에 대한 보조금을 둘러싼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양측이 앞서 상호 부과한 보복 관세 적용을 5년간 유예하기로 합의했다. 이에 대해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과 영국은 그동안 승자가 없는 싸움을 해왔다"며 "중국이라는 공동의 적이 생기면서 양측이 손을 잡게 됐다"고 평가했다.
중국은 '메이드 인 차이나 2025' 전략에 따라 국영 항공 제조업체 코맥을 앞세워 에어버스의 전철을 밟겠다는 방침이다. 코맥은 자체 개발한 제트기 C919를 필두로 올해 말 보잉 737과 에어버스 A320 계열 여객기와 경쟁한다는 구상이다. 장거리 노선에 투입할 수 있는 기종인 C929를 제작하기 위해 러시아와도 제휴를 맺기도 했다. 중국과 러시아의 항공·우주 동맹은 장기적으로 미국과 유럽에 실질적인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었다.
물론 현재 중국이 미국 및 EU와 대등하게 경쟁하기는 어려운 수준이라는 해석이 많다. C919는 보잉 737맥스, 에어버스 A320네오와 비교하면 모든 성능 및 기능 측면에서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중국은 자급자족이 가능한 항공·우주 공급망을 갖추지 못하고 있기도 하다. C919에는 미 제너럴일렉트릭(GE)과 프랑스 사프란의 항공기 엔진이 올라간다. 이는 미국과 EU가 중국을 압박할 수 있는 약점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중국에도 무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거대하고 빠르게 성장하는 항공·우주 시장으로 꼽힌다. 보잉과 에어버스가 중국에서 시장 점유율을 잃는다면 적지 않은 타격을 입게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바클레이에 따르면 중국은 현재 예상 수요보다 작은 규모의 항공기 주문을 넣고 있다. 여전히 737맥스를 재인증하지 않았고, A320 주문도 비정상적으로 낮은 수준이다. 일각에선 중국이 항공기 부족분을 C919로 채울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WSJ은 "따라서 미국과 EU가 상호 적대 관계를 종식하고 손을 잡는 게 양측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분석했다. C919 개발은 서방의 일부 공급업체에 혜택을 주지만,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을 위반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중국 정부가 자국의 국영 항공사에 필요한 만큼의 항공기를 원하는 가격에 살 수 있도록 지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WSJ은 "미국과 EU의 무의미하고 소모적인 공방이 끝을 맺었다는 점은 투자자들에게 반가운 소식"이라면서도 "보잉과 에어버스가 직면한 장기적인 위협의 심각성도 부각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박상용 기자 yourpenc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