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오전 도쿄 오다이바의 대형 전시회장인 도쿄빅사이트 아오미전시관에는 300m 넘게 긴 줄이 늘어섰다. 올해로 6회째를 맞는 '도쿄캠핑카쇼 2021'의 입장을 기다리는 줄이었다.
유료 전시회지만 12~13일 주말 동안 1만명 가까운 방문객이 찾은 것으로 추산된다. 일본 정부가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긴급사태를 선포하면서 정한 대규모 이벤트 허용인원(1일 5000명)을 꽉 채운 셈이다.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일본에서는 언제 어디서나 자신만의 공간을 확보할 수 있는 캠핑카가 각광받고 있다. 일본RV협회가 지난 7일 펴낸 '캠핑카백서2021'에 따르면 일본의 캠핑카 보유대수는 2020년 12만7400대로 10년새 두배 가까이 늘었다.
캠핑카가 여행·레저문화의 수단으로 주목받으면서 최근 수년간 보유대수가 연간 5%대(6000대 안팎)의 증가율을 이어왔다. 코로나19가 확산한 지난해에는 6.7%(8000대)로 10년새 가장 높은 증가율을 기록했다. 연간 출하대수는 2018년 5637대에서 7434대로, 시장규모도 424억엔(약 4315억원)에서 582억엔으로 커졌다.
보유대수만 늘어난 게 아니다. 캠핑카의 트렌드도 코로나19를 기점으로 크게 바뀌었다. 지금까지는 대당 가격이 1500만엔(약 1억5255만원) 안팎인 럭셔리 캠핑카가 인기였다. 외국산 밴이나 대형트럭을 개조한 모델이었다.
100대 이상의 캠핑카가 새로 선보인 올해 관람객의 주목을 받은 것은 일반 미니밴(승합차)이나 경트럭을 개조한 실속형 캠핑카였다.
간단한 조리시설을 갖추고 2인용 침실로 개조가 가능한 경트럭은 판매가격이 169만엔(약 1719만원)이었다.
번듯한 주방을 갖추고 낮에는 테이블과 소파를 구비한 생활 및 업무 공간, 밤에는 4인용 침실로 변신하는 경트럭 캠핑카는 258만엔~315만엔이면 소유주가 될 수 있다.
일반 승합차를 개조한 캠핑카는 주방과 거실, 간이 화장실 등 럭셔리 캠핑카의 사양을 모두 갖추고도 450만엔 수준이었다. 일본에서 가족용 차량으로 인기가 높은 닛산의 미니밴 '세레나'를 개조한 모델은 524만엔이었다.
일본RV협회 관계자는 "매년 좀 더 크고 보다 화려하게 진화하던 캠핑카가 1년새 평소에는 자가용으로 쓰다가 언제든지 캠핑카로 전환이 가능한 '라이트캠퍼'의 시대로 바뀌었다"고 분석했다.
캠핑카의 주고객층이 레저생활을 고급스럽게 즐기려는 사람들에서 피난처나 업무공간을 찾는 사람들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밀집한 장소를 피하려는 생활양식이 확산하고 재택근무가 정착된 영향이다.
초심자와 여성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캠핑카 제조업체도 운전하기 편하면서 여행과 생활을 병행할 수 있는 중저가 모델을 집중 개발했다는 설명이다.
2019년 1052대였던 경차 캠핑카 판매대수가 지난해 1463대로 40% 늘어난데서도 실용성을 중시하는 경향을 읽을 수 있다.
일본RV협회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캠핑카를 소유하는 목적은 여행·레저가 60%로 여전히 가장 높았다. 반면 '피난공간 등 생활거점의 하나로 캠핑카를 소유하고 있다'거나 재택근무용이라는 응답도 30%와 10%에 달했다.
코로나19로 장거리 이동을 자제하는 분위기가 확산하면서 가까운 주변 지역을 목적지로 선택하는 경향이 강해진 점이 실용적인 캠핑카를 선호하는 배경으로 꼽힌다. 캠핑카 소유주의 49.2%가 여행 목적지로 '주변 지역'을 꼽았다.
자동차를 생활거점으로 삼는 '밴 라이프(Van life)'가 대중화하는 것도 캠핑카 시장의 외연을 넒히고 있다. 이시카와현 노토반도 등 일본의 지방에는 장기간 주차가 가능한 주차장과 공유하우스, 공유오피스 등을 완비한 시설과 사업자가 늘고 있다. 밴 라이프를 즐기는 사람들인 '밴 라이퍼'가 주고객이다.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코로나19 유전자증폭(PCR) 검사소와 진료실, 의료진의 휴식공간으로 캠핑카를 활용하기도 한다.
일본VR협회 관계자는 "고급 캠핑카보다는 실용적이면서 차에서 숙박하는 '차박'용 차량보다는 주거용 시설을 충실히 갖춘 캠핑카가 대세"라고 말했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