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 시절 오바마 연설 암송…짧고 명확한 'MZ세대 화술'

입력 2021-06-13 17:54
수정 2021-06-14 02:07
만찬 자리에서 ‘여론조사’ 결과를 전해 듣자 곧바로 자신의 태블릿PC를 꺼낸다. 시시각각 ‘핫뉴스’를 확인하는 ‘이슈링크’에 접속해 여론 동향을 살핀 뒤 SNS에 소감을 올린다. 내용은 서너 줄인데, 우주복을 입고 국민의힘 깃발을 꽂는 익살스런 ‘짤’(사진이나 짧은 동영상·사진)이 따라붙는다. 여기까지 걸린 시간이 단 10분. 글이 여기저기로 퍼지자 신문, 방송 등 전통 미디어들이 가세한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당대표 경선 여론조사에서 처음으로 1위에 오른 지난달 16일, 당시 만찬에 동석했던 김재섭 전 최고위원이 들려준 일화다. 두 살 차이의 후배인 김 전 최고위원은 “기성 언론이 놓치는 사회 이슈와 불만을 빠르게 파악한 후 ‘날것’ 그대로 드러낸다”며 “디지털로 바뀐 세상의 흐름에 가장 적합하게 적응한 정치인”이라고 평가했다.

이 대표의 정치에서 메시지는 가장 중요한 무기다. 그의 말과 연설은 기성 정치인들과 달리 짧고 명확하며 신속하다는 특징이 있다. 페이스북에 게시하는 글은 보통 100자 안팎이고, 이슈에 대한 대응도 빠르다. 2030(20대·30대)으로 대표되는 MZ세대(밀레니얼+Z세대)의 소통법을 닮았다. ‘침묵은 금’, ‘겸손의 미덕’ 등을 강조하는 기성 정치인들과 달리 싸움을 피하지 않는다. MZ세대는 이런 태도에 오히려 환호한다.

이 대표는 기존 정치인들이 ‘혹여나 논란을 부를까’ 말섞기를 꺼리는 남녀 젠더갈등 문제에도 정면승부한다. 그는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여자아이스하키 단일팀 논란에 대해 “정부 정책을 위해 수년간 국가대표가 되기 위해 땀 흘린 개인은 희생할 수 있다는 시대착오적인 전체주의”라고 비판한다. 그러면서 들고 나온 게 여성할당제 폐지다.

정치인의 명연설 내용과 메시지 구조에 대한 관심도 많다. 미국 하버드대 재학 시절엔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연설을 암송하고 다녔다고 한다. 이 대표는 “그 시절 오바마의 연설은 MP3 플레이어의 재생 목록 1번이었다”며 “스토리텔링을 기반으로 한 치밀한 전개 구조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회상했다.

이동훈/성상훈/좌동욱 기자 lee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