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토피아를 그린 소설 속의 한 장면 같은 일이 현실이 됐다. 디지털 감시사회의 도래 말이다. 하지만 이를 문제 삼는 모습은 보기 힘들다. 왜 그럴까.
《친절한 독재자, 디지털 빅브라더가 온다》는 코로나19 확산 대응을 명분으로 빠르고 깊숙하게 생활 곳곳으로 침투한 디지털 독재의 위험성을 경고한 책이다. 전염병 확산 방지를 내세우며 방역당국은 코로나 확진자가 나온 특정 장소를 방문했던 수만 명의 개인정보를 이동통신사로부터 넘겨받아 무단으로 사용한다. 곳곳에 설치된 QR코드 인증기기, 안면인식 체온측정기, 폐쇄회로TV(CCTV)는 개인의 일거수일투족과 생체 정보, 개인정보를 쉴 틈 없이 수집한다.
개인정보를 수집하는 데 거리낌이 없는 권력의 모습에서 문제의식을 찾아보긴 힘들다. 코로나 방역이라는 대의명분에 눈이 가려진 개인들도 프라이버시 침해를 당연하게 여긴다.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나 이오시프 스탈린이 꿈속에서나 그렸을 통제사회가 별다른 저항 없이 현실에 뿌리내린 것이다.
이 같은 ‘디지털 빅브라더’ 도래에 가장 앞장선 나라는 중국이다. 오늘날 중국은 공공장소에 6억 대 이상의 CCTV, 안면인식 장치를 설치하고 드론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다. 인터넷 등장 초기부터 ‘만리방화벽’을 구축하며 사상을 탄압하고 검열을 일상화했다. 중국 정부의 비호에 힘입어 급성장한 중국의 인터넷 기업들은 감시사회 등장의 선봉에 섰다.
이런 중국의 모습에 위기를 느끼고 견제하려 했던 국가들도 전염병 확산 이후 순식간에 놀랄 만큼 중국과 비슷해졌다. 현대 세계는 《1984》, 《멋진 신세계》에 그려진 디스토피아 사회를 빠른 속도로 닮아가고 있다. 스마트시티라는 미명하에 친절한 독재자인 디지털 빅브라더가 통제하는 거대한 감옥이 들어서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 가상세계와 현실 세계를 지배하는 디지털 빅브라더가 관심을 가지는 대상은 데이터다. 그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빅데이터에 기반한 감시 도구, 정교한 알고리즘을 활용한다. 삶은 디지털 필터링에 의해 ‘같은 것’들로 둘러싸인다. 모두가 같은 것을 보고, 같은 것과 연결되면서 고유의 색이 사라졌다. 그리고 인터넷은 여론 조작과 가짜뉴스, 선동, 혐오의 공간으로 바뀌어 갔다. 디지털 발전이 민주주의의 발전보다는 퇴보에 이용되는 모습이다.
조용히, 그리고 광범위하게 일상에 침투한 디지털 전체주의의 위협을 포착해낸 저자의 눈매가 여간 매서운 게 아니다. 이제 모두가 두 눈을 부릅뜰 때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