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직원이 직장 내 괴롭힘으로 추정되는 이유로 극단적 선택을 한 것과 관련해 정부가 이 사안을 면밀히 들여다보기로 했다. 최근 노무 이슈로 갈등을 빚는 정보기술(IT) 업계는 불똥이 튈까 노심초사하는 분위기다.고용부 '직장 내 괴롭힘' 여부 집중 조사
9일 IT 업계에 따르면 고용노동부는 네이버를 대상으로 특별근로감독을 하기로 결정했다. 중부지방고용노동청과 성남지청 근로감독관들로 구성된 팀이 당장 이날부터 특별근로감독을 벌인다. 이번 감독에서 고용부는 직장 내 괴롭힘이 있었는지 집중 조사할 방침이다. 다른 직장 내 괴롭힘 사례가 있었는지도 조사한다.
앞서 네이버 직원 A씨는 지난달 25일 경기도 성남시 자택 근처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가 남긴 메모에는 평소 업무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내용이 적힌 것으로 알려졌다. 네이버 노조 '공동성명'은 A씨가 과중한 업무 스트레스와 직장 내 괴롭힘을 당했다는 내용의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고용부에 특별근로감독을 요청했다.
고용부는 근로시간과 휴게시간 등 노동법 전반의 준수 여부도 점검할 예정. 네이버 노조가 지난 3월 비즈·포레스트·튠 등 3개 사내독립기업 소속 조합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10%가 '주 52시간을 초과해 일한 경험이 있다'고 답한 것에 대한 조치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법정 근로시간 초과 시 사업주에게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돼 있다.
고용부는 "직장 내 괴롭힘 조사 결과 등은 모든 노동자가 알 수 있도록 공개하고 불합리한 조직 문화 개선을 위한 후속 조치도 할 계획"이라며 "네이버에 대해 실시하는 이번 특별감독이 IT 업계 전반의 기업 관행을 개선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엄정하게 근로감독을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네이버, 일자리으뜸기업 선정…근로감독 6년째 면제
근로감독관집무규정 제12조에 따르면 사업장 근로감독의 종류는 △정기감독 △수시감독 △특별감독 총 3가지로 나뉜다. 정기감독은 일반적인 근로감독을 말하며 수시감독은 정기감독 외 별도의 계획을 수립해 실시하는 근로감독을 의미한다.
하지만 특별감독의 경우 상황이 달라진다. 근로계약 위반 등 중대한 행위로 노사분규가 발생했거나 폭언, 폭행, 성희롱, 직장 내 괴롭힘 등 다수의 민원이 발생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사업장이 대상이다. 고용부가 네이버 사태를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조사기간 차이도 크다. 정기감독과 수시감독은 점검일 전 1년이 기한이지만 특별감독은 실시일 전 3년을 대상으로 한다. 사후 조치 무게감도 다르다. 정기감독과 수시감독은 시정지시 이행 시 행정 종결하는 반면 특별감독의 경우 시정기회 부여 없이 곧바로 사법처리 또는 행정처분 조치가 내려진다.
이번 사안이 더 문제가 되는 이유는 따로 있다. 네이버가 노동부로부터 '일자리으뜸기업'으로 선정돼 근로감독을 6년째 면제받았기 때문이다. 노동부는 매년 고용 창출과 고용의 질 개선에 기여한 기업을 선정해 3년간 '정기 근로감독 유예' 등의 혜택을 부여한다. 선정에는 노동시간 단축, 일·생활 균형 실천 등이 평가 지표로 활용된다.
지난 2019년 네이버는 일자리으뜸기업 선정 소식을 전하면서 "주52시간제 시행에 맞춰 직원이 원하는 시간을 골라 하루 8시간, 최대 주52시간 일할 수 있는 '선택적 근로시간제'를 전면 도입했고 불필요한 야근을 줄이는 문화를 만들었다"고 자평했다.
하지만 최근 네이버 노조가 극단적 선택 사건 진상을 규명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현실은 일자리으뜸기업과는 거리가 있는 모습이다. 공동성명이 동료 증언, 사내 메신저 기록 등을 토대로 자체 조사해 공개한 결과에 따르면 A씨는 직속 상사의 지나친 업무지시로 야간, 휴일을 가릴 것 없이 과도한 업무에 시달린 것은 물론 해결할 수 없는 업무지시와 모욕적 언행을 받아 정신적 스트레스를 겪은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도 직장 내 괴롭힘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조사 중이다.
지난 3월 이해진 글로벌투자책임자(GIO)와 한성숙 대표가 참석한 회의에서도 문제 제기가 있었지만 동석한 인사 담당 임원은 "책임 리더의 소양에 대해 경영 리더와 인사위원회가 검증하고 있으며 더욱 각별하게 선발하고 있다"는 원론적인 답변만 한 것으로 전해졌다."IT 업계, 당분간 몸 사릴 수밖에 없어"
IT 업계 리더 격인 네이버가 특별근로감독을 받자 업계는 불똥이 튈까 우려하는 모습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어느 정도 준비를 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네이버가 어떤 처분을 받을지 조용히 기다리며 당분간 몸을 사릴 수리는 관망세가 이어질 것 같다"고 말을 아꼈다.
익명을 요구한 노무사는 "언론이 주목하고 여론이 상당히 안 좋기 때문에 네이버나 카카오가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높다"며 "IT 업계에서 직장 내 괴롭힘으로 추정되는 이유로 사망이 발생한 건 굉장히 이례적이다. 고용부가 어떤 조치를 내리느냐가 향후 기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는 아예 이번 기회를 IT 업계의 고질적 병폐를 도려낼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말까지 나온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고용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 2019년 7월부터 올해 4월까지 직장 내 괴롭힘 신고건수는 총 9788건으로 이 중 IT 대기업이 포함된 정보통신업은 377건으로 전체의 3.7%으로 집계됐다. 분위기상 IT 업계에서 제대로 된 신고와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특히 네이버에서는 단 한 건의 신고도 없었을 뿐더러 카카오의 경우 2019년도에 업무를 부여하지 않는다는 내용으로 신고가 접수됐지만, 이마저 며칠 후 자진철회된 것으로 나타나 폐쇄적인 업계 분위기를 대변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노 의원은 "몇 년 전만 해도 네이버뿐 아니라 넷마블 등 게임업계에서도 괴롭힘과 과도한 업무강도를 이기지 못해 자살하거나 돌연사 하는 사례가 많았음에도 정작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신고 건수는 단 한 건도 없다"며 "IT 업계가 워낙 협소해 피해자들이 재취업 제한 등 보복을 두려워하고, 회사는 이를 이용해 조직적으로 은폐하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꼬집었다.
이어 "그동안 생산직 산재에 비해 사무직의 정신적인 산재에 대한 관심이 적었던 것이 사실"이라며 "산재 은폐 등에 대해 IT 업계 전반적으로 대대적인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하고 국정감사 등을 통해 진상을 규명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강경주 한경닷컴 기자 qurasoha@hankyung.com